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어계신다. 심지어는 내가 그분을 가장 필요로 하는 그 시간에도 숨어계신다. 그분이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는 시기를 신앙의 선배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러왔다.
욥은 지금 그 밤을 지나고 있다. 우리도 때때로 그 밤을 지난다.
욥에겐 그 밤이 어떤 밤이었을까?
무지의 밤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고난 속에 있는지, 하나님은 왜 숨어만 계시는지 아무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무지의 밤이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23:8-9)
소망의 밤이기도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소망은 더욱 간절해 진다. 그의 소망은 하나님이 그의 얘기를 들어주시고(6절), 그의 결백을 믿어주시는 것이다(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이제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고백이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금을 불 속에 넣어보면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그가 나를 털고 털어도 순금같이 나오리라'했고, 새번역은 '나를 시험해보시면 내가 흠이 없는 것을 아실 것'이라 했고 유진 피터슨의 메세지역은 '그가 나를 철저히 살펴보신다 해도 나는 영예롭게 그 시험을 통과할 것이다'라 했다.
앞장 22장에서 엘리바스가 고발하는 그런 죄인이 아님을 하나님 만은 알아주실 날을 소망한다.
그런데 그 밤은 두려움의 밤이기도 하다.
그 두려움은 어두움 때문 만은 아니라 했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 했다(16-17절).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13절)
NIV는 '그분 홀로 서계시니..."(he stand alone)라고 했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주권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기대할 수 없고 내가 받기 어려운 것도 내미실 수 있는 두려운 하나님을 우리는 그 밤에 만나게 된다.
우리의 밤엔 무지와 소망과 두려움이 뒤섞여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정갈하고 고요한 정원이 아니라
어둡고 혼란스러운 숲속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