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욥24:1)
욥기 22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죄인됨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23장에서 욥은 언젠가 하나님이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실 것이라 대답한다. 이어서 24장에서는 그 때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답답함을 노래한다.
욥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의의 제 현상을 조목조목 열거한다(24:2-16). 그리고 친구들이 말한 바 악인의 심판은 반드시 임해야한다고 말한다(17-25절). 그런데 그 때가 언젠인가 하는 것이 욥의 질문이다.
욥 뿐 아니라 우리도 이 세상의 수 많은 불의의 현장에 왜 하나님이 빨리 개입해주시지 않는지, 정의와 공평이 땅에 떨어져 있음에도 왜 하나님은 당신의 세상을 방치해 두시는지, 언제 하나님의 정의가 도래할 것인지 우리는 답답하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른 듯 하다. 내가 원하는 내 시간에 하나님의 등장해 주시기를 원하지만,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을 고집하신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당장' 예수님이 오시기를 원하셨지만 예수님은 '나흘 후'를 당신의 시간으로 정하셨다. 구약의 말미로 갈수록 고통스러운 이스라엘의 민중은 메시야의 도래를 간절히 고대하지만, 하나님은 '400년 후'를 생각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드디어 등장하신다(갈4:4)
하나님과 우리의 다른 시간표는 우리에게는 믿음의 도전이 된다. 우리의 시간표에서는 나는 답답한데,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가운데 당신의 시간표 대로 일하신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