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14

본과 구세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기독교 소설의  원제 In His Steps는 이 구절에서 나왔다. 예수님은 따라야할 본이었다.


유명한 기독교 고전 토마스 아켐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가 따라야할 본이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자취라고 말한다. 그분처럼 우리도 고난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분처럼 고난을 악으로 갚지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자취를 따라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존 스토트는  '기독교 기본진리'에서 이 본문만큼 구세주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본되심을 말하는 맥락에서  24절의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하는 죄사함의 대속이  불쑥 튀어나온 것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확신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그 비의도성이 예수님이 단순한 본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구세주되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임을 말한다.


베드로에게 본이 되신 예수와 구세주 예수는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할 본이 되는 동시에 길을 잃은 우리가 돌아가야할 영혼의 목자가 되신다(25절). 


우리들은 예수님을 갈라놓기를 좋아한다. 예수의 구속을 배제하고 따라야할 본으로만 추종하는가 하면, 구세주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분의 본을 따르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내부의 양 끝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배우고, 더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복음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