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악이 승리하는가 하면 선이 외면당하기도 한다. 오늘의 묵상본문(벧전3:13-17)에서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있고(16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17절)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베드로가 말하는 선은 무엇일까? 문맥상 고난과 연관이 깊다. 소극적으로는 고난을 초래할만한 비방거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요, 적극적으로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축복하고, 선하게 대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선대해도 선이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베드로의 설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13절)고 베드로는 말한다. 보상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왜 우리가 선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첫째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베드로는 말한다(15절). 우리의 선의 동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우리는 온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공평과 정의, 진실과 선함이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를 소망하며 언젠가 주어질 하나님의 상급을 소망한다. 우리에게는 "소망의 이유"가 있다(15절).
셋째로 그것은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한다(16절).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결국엔 비방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종종 양심을 억누르고 살던 사람들이 양심선언을 하는 경우들을 본다. 우리의 선한 양심은 잠자는 양심들을 일깨운다.
우리는 시대의 양심이 되어야 하고, 그 사회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우리가 직면한 작은 문제들이나 우리를 향한 무고함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