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14

변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학1:4)

사람은 외적 환경에 의해서 내적인 동기가 변질될 수 있다. 

539년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유다민들은 귀환하여 곧 바로 제단과 매일의 제사를 복구하고(에스라3), 이어 성전건축을 시도한다.  

그러나 주변 이웃들의 반대에 직면한다. 이들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 앗수르 왕 에살하돈의 이주정책으로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게 된 이민족들이다(에스라3:2). 

북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멸망하였으므로 유다민의 귀환까지 거의 180년을 그 땅에 산 셈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유다민의 귀환이 반가울리 없다. 

그래서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유다민의 성전건축을 방해한다. 에스라 4:4에 의하면 이들은 고레스왕 때부터 캄비세스를 거쳐 다리오가 즉위할 때(주전 522년)까지 그 땅을 관할하는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건축을 방해했다.

즉 성전건축을 시도했다가 약 20년 정도를 주변인들의 반대로 중단한 상태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사이 유다민들이 성전건축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다리오왕이 즉위할 때 쯤 주변인들의 방해도 시들해졌기에 학개는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보았지만 유다민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댄다.

외적인 환경은 우리의 동기를 변질시킬 수 있다. 오랜 방해를 경험하면서 이들은 성전건축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비전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다른 것에 열중한다.  이들은 이제 멋있는 자기들의 집을 짓는데 만 열중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위기라는 말이 여기 저기서 들린다. 많은 교회들이 생존을 고민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들이 부흥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앗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어려운 현실 때문에 복음에 헌신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변질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