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가 성숙의 표지는 아니다. 하나님은 각자 다른 은사들을 주셨기 때문에 남이 가진 은사를 부러워할 수도 있고, 남이 갖지 못한 은사를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은사를 사랑없이 사용하는 것은 전혀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방언은 좋은 은사이나 다른 이들에게 이해가 되지 못한다면 공적인 예배에서 자제함이 사랑이요 성숙이다. 고린도교회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만마디 방언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다섯마디가 더 가치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가졌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부를 얼마나 가졌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로 우리는 그의 사람됨을 판단한다.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지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느냐 보다 그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로 그를 알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자리보다 섬김이 더 중요하다 하셨다.
우리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것이 나를 증명하지 못한다. 남들이 갖지 못한 은사나 자리나 부나 지식도 나를 증명하지 못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도 자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한 것은 나를 말해준다.
마더 테레사는 위대한 사람이란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위대한 사랑으로 하는 사람이라 했다.
예수님은 시골동네의 평범한 목수였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위대한 사랑은 그가 우리의 구세주이며 만왕의 왕되심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