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2:7)
중풍병자를 대하는 예수의 방식은 당시의 신앙인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죄를 사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의 고유권한인데 나사렛에서 올라온 목수 예수가 자신도 죄를 사한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이들은 곧바로 신성모독이라 몰아쳤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된 충돌로 보인다. 사람들의 반응은 뻔히 예상되는 것이었지만, 시끄러움을 피하지 않으셨다. 중풍병자의 죄를 사한다고 선언하심으로 치유자 혹은 랍비 정도로 예수를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생각에 충격을 가하셨다. 그는 논쟁과 충격의 한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우리는 논쟁을 피해가며 조용히 예수를 전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데, 진정한 예수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충돌하지 않고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에게 편리한 예수상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부하신다.
죄사함의 선언은 하나님됨의 선포였다. 예수님은 신성을 주장하신 것이다. 당시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선언을 그렇게 받아들였고,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 충돌을 만드셨다. "인자가 땅에서 죄사함의 권세를 가진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의 만남엔 이 충돌이 있다. 당황스럽게 예수님을 만나야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편리한 대로 만들었던 나의 예수상을 깨뜨려야 하고, 예수 자신이 보이고 싶은 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때로는 신앙의 여정에서 내가 쌓아온 논리와 경험까지도 무로 돌려야 하는 깨어짐이 있다.
우리는 때로 고통의 심연에서 그런 예수를 만나고, 내가 결코 가지 않을 것 같은 길에서 일하시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손짓하시는 그를 만난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경탄하고 놀라고 따라가야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