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막8:23-24)
마틴 로이드존스는 이 구절을 구원에 적용하여 설교한 적이 있다. 치유를 받았으되 온전히 보지 못하고 사람을 '나무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처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되,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는 한 순간에 마무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 많은 경우는 아주 오랜 시간 하나님이 그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심으로 어느날 드디어 구원의 체험에 이르게 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긴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본문의 맹인처럼 예수님의 일하심의 어떤 체험을 하지만, 아직까지 '나무같은 것'만 보는 사람이 있다. 온전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기는 보이되 온전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무언가 보지만 온전히 보지 못한다. '나무 같은 것'만 본다.
구원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며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저 '나무 같은 것' 정도로 어렴풋이 보는 이들도 많다. 온전히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이들이다. 무엇인가 보이기는 하되 그들이 보는 것은 아직 '나무 같은 것'이다.
나무 같은 것만 보는 맹인을 치유받았다고 볼 수 없듯이, 반쯤 보이는 이를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질문은 우리의 영원을 가늠하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무엇이 보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