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출10:3)
메뚜기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메세지에 이번에는 바로의 신하들이 나섰다. 이러다간 애굽이 망하게 생겼으니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것이다.
바로는 모세를 불러 누가 갈 것인지 묻자,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들까지도 가야한다 말한다.
번번히 거절을 경험했던 터라 모세는 바로가 수용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백성의 일부만 간다든지, 바로가 원하는대로 남자들만 간다든지, 사람들만 가고 가축들은 두고 간다든지 할 수도 있었지만 모세는 기준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상은 타협없이는 살 수 없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내 것만 주장할 수는 없다.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물러서야만 한다. 그러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요, 주님이라는 우리의 고백은 주변 사람들에게 반발심을 가져온다. 남자와 여자의 연합으로서의 결혼만을 인정하는 우리의 입장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몰인정한 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양보할 수 없다.
모세의 단호한 태도에 화가난 바로는 그를 쫒아낸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비록 값지불을 치루더라도 제자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적당히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살 수 없는 제자의 믿는 바가 있고, 행할 바가 있다. 바로처럼 세상은 "이 땅에서만...", "너무 멀리는..." "장정들만..." 하면서 우리의 기준을 낮출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기준을 낮추는 순간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예수님 말씀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신세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