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15

광야에서 살아남기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출16:29)

아이들이 어렸을 때 즐겨보단 만화 중엔 '사막에서 살아남기'가 있었다. 광야에서의 그들의 삶은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광야의 뜨거운 바람과 햇볕, 밤에 몰려오는 추위, 집단 생활에서 오는 전염병의 위험, 광야 여행객을 노리는 약탈꾼들....

그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명하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생뚱맞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광야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때때로 하나님의 자상함은 명령의 형태로 온다.

사람들은 그 광야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단없이 행진을 계속했다면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안식일이 있기에 쉼을 통해 재충전하고, 새롭게 행진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명령의 형태로 강제력을 행사하셨다. 우리는 반드시 쉼이 필요하다.

심지어 만나를 거두러 가는 수고도 하지 않고 온전히 안식하도록 전날에 두배를 거두도록 하셨다.  다른 때와 같이 남겨두어도 상하거나 냄세도 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이 세밀한 배려였다. 

평소보다 더 많이 가졌을 때, 우리는 소유의 가속도에 빠지기 쉽다. 점점 더 많이 가지려고 안식을 잃어버리기 쉽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안식일에도 거두러 나왔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만나를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많이 소유할 수록 짐이 되고, 소유해도 그것은 곧 상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더 주셨다면 단 한가지, 우리의 안식을 위함이다.  

안식은 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안식은 '여호와 앞에 거룩하게 지켜야할 안식일'이었다. 광야의 치열함이 주는 최대의 위기는 생존의 싸움을 하면서 하나님을 잊는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그들이 애굽을 떠난 이유도, 그 광야의 고통을 참는 이유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보여주듯 사람들이 이유를 찾지 못하는 곳이 지옥이다.  

안식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우리의 관심사를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살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며, 삶에 지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삶이 치열할 수도록 우리에겐 안식이 필요하며, 안식이야 말로 우리의 광야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