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15

단순한 기도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아침 기도시간에 대 주교는 빠짐없이 기도한다. 그의 기도는 항상 "오! 전능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 으로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오냐!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깜짝 놀란 대주교는 "하나님 정말 제 기도를 듣고 계셨군요"하면서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고 만다.

바디매오에게 기도는 실제였다. 맹인이었던 그는 보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기도했다. 그에겐 기도는 삶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구하는 것이었다. 

바리새인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창한 미사여구의 기도도 아니었고, 대주교처럼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시간이 되어 기도하는 경건의 형식도 아니었다.

기도의 소화불량에 걸린 상테로 지낼 때가 있다. 기도에 대해 들었던 수많은 말들, 성경에서 들었고 설교시간에 들었고, 기독교 서적에서 보았단 기도에 대한 많은 것들이 뒤엉켜 기도란 뭔가 복잡하지만 해야만 하는 의무로 다가올 수 있다.  기도의 구름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형국에 이르게 된다.  

오늘의 사건에서 예수님은 "그래,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신다. 그런데 너무도 복잡한 우리는 정작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는지 조차 생각지 못한다. 많은 것을 기도하면서 정작 무엇을 꼭 들어주시리라는 것도 명확하지 않게 된다.

바디매오는 단순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셨을 때,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심오한 기도의 영성이란 것이 오히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기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