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08

눅5:27-32 주게서 부르시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마태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부류였습니다.
그가 아직 변화된 흔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런 마태들입니다.
주님 제자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또 다른 마태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마태들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같은 부류로 끼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마태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9/06/08

예수사건은 긍휼의 사건이다.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눅1:58)

누가가 기억하는 예수사건은 긍휼의 사건이다. 누가복음 1장에는 유난히 '긍휼'이 많이 나온다. 사가랴에게 아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을 때, '요한'이라 지으라 했는데 그 뜻도 '긍휼을 입었다'는 뜻이다.

긍휼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마리아의 노래도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찬양인데(1:50,54), 메시아의 어머니 되는 자격을 자기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허락하셨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사가랴 부부도 아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아들을 낳게 하셨다.

긍휼은 더 나아가 인생을 공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해준다. 인생이 불공평해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부한 자를 낮추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쓰셔서 인생을 공평케 하신다.

무엇보다도 긍휼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우리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예수를 보내시고 세례 요한을 준비시켜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주신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는 사건은 긍휼 사건이다. 우리에게 긍휼이 아니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9/03/08

눅1:1-6 누가의 한사람을 향한 열정

누가복음은 24장으로 된 긴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데오빌로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록한 이유는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히 하기위해서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누가는 기록을 여기서 끝마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역시 데오빌로의 믿음을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누가의 이 한 사람을 향한 열정과 정열을 배우고 싶습니다.
어느새 목회의 성공이 숫자로 파악되는 세태에서 누가 정신을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