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14

우리의 섬김의 대상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삼상23:12)

그일라 사람들에게 다윗은 은인이었다. 그일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다윗이 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다윗이 나서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던 그의 위치가 노출된다는 뜻이요, 여처하면 블레셋으로 피신할 수 있는 근거도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기도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일라를 구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알게된 사울은 곧 출정을 결정한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울에게 넘길 것인지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은 넘길 것이라 말씀하신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섬길 대상들을 주신다. 다윗에게는 그일라 사람이요, 목회자에게는 교우들이요, 목자에게는 목장원들이다. 개인적으로 섬길 누군가를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섬김이 반드시 감사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일라를 구하기 위해 다윗은 엄청난 댓가를 지불했지만, 위기에 처하자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사울에게 넘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기기 위해 오셨다 하셨다.. 그분의 섬김의 대상은 죄인들인 우리들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롬5:8). 사람들은 예수를 저주하고 채찍질하고 침뱉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가 섬긴 대상들은 죄인들이다.

우리의 섬김의 대상 역시 죄인들이다. 섬김이 감사로 돌아오지 않고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들도 많다. 그렇다고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그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없다. 그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섬김에는 어쩔 수 없는 상처가 뒤따를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을 섬겼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이기 때문이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9-10)

3/24/14

지켜져야할 경계선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삼상22:21)

사울은 결국 경계선을 넘고 말았다. 그가 여호와의제사장들을 죽인 일은 결코 넘어서지 말아야할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그 일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아무리 관계가 악화되어도 결코 넘어서지 말아야할 경계선이 있다. 부부 관계에서도 결코 내뱉지 말아야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이 있다. 교인들과 목회자의 관계에서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결코 넘어서지 말아야할 선들이 있다. 나라 간에도 결코 넘어서지 말아야 경계선이 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점에서 다윗과 사울은 대조를 이룬다. 다윗의 입장에서 사울은 이유없는 박해자였다. 쫒기고 살해 위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울은 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추적한다. 그런데 정작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 다윗의 태도였다.

반면 사울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여호와의 제사장들' 마저도 죽이고 만다. 이일로 사울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그의 가문이 저주에 이르게 되는 빼놓을 수 없는 죄목을 갖게 되었다. 



 


3/12/14

정치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 "(삼상18:23)

다윗의 기사를 읽다보면 고도의 정치적 수완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는 사울이 자기를 경쟁자로 여기고  죽이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윗은 사울의 왕위까지 넘볼 수 있는 대중적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사위 제안을 한 것은 다윗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일종의 술수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다윗은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사울이 또 다른 제안을 했을 때도 다윗은 똑같은 대답을 한다. 만일 다윗이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사울은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다윗의 대답은 매우 정치적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울이 죽었을 때 다윗이 보여주었던 태도, 그리고 사울이 죽은 후 잔존세력이었던 사울의 군대장관을 요압이 죽였을 때에도 다윗이 취한 행동들은 민심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매우 정치적 행동들이었다. 

그런데 그의 정치력은 어디서 왔을까? 목동출신의 다윗이 정치세계의 복잡한 관계의 본질을 뚫고 왕의 자리에 오르고, 왕가에 얽힌 민감한 사안들에 고도의 정치적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분명 다윗은 술수가는 아니었다. 사람들을 manipulation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다윗의 정치력의 근원은 그의 마음에서 왔다고 본다.

사울이 사위제안을 했을 때, 진심으로 자기는 거기에 합당하지 않다 생각했고,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그리고 사울의 군대장관이 죽었을 때 진심으로 그들을 애도했다. 복잡한 계산을 하고 행동을 취했다기 보다는 자신이 직면한 상황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이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가진 사람들의 술수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삶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어느 순간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매우 민감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조종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지혜가 그들의 올무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모르게 놓여진 인생의 덫을 피하고 결과적으로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가들의 지혜를 뛰어넘게 한다. 올바른 지혜는 올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삐뚤어진 마음에서 아무리 지혜를 짜아낸다 해도 어디선가 새어나가는 빈틈이 생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잠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