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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로 2월 27, 2015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출18:11)
이 고백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고백이다. 혹자는 모세의 여호와 신앙이 이드로에게 영향받은 것이라 하는데, 본문에 의하면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모세가 그와 동거했을 때, 신앙에 대해서 서로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알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그는 과거 '미디안의 제사장'이었고, 이제는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다'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희생제사까지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변화가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할 때 모세에게 가족은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시점에서 장인에게로 돌려보냈다. 아들의 피할례 사건 직후라고 생각되는데, 아내와의 마지막 장면은 모세를 향한 아내의 원망 섞인 한탄이었다.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에게 여호와의 소명을 이해시키고, 아내가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면 출애굽의 영광 속에 모세는 쓰임받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있다.
종종 그것은 우리에게 순종의 테스트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은 나머지 것들을 책임져 주신다(마6:33). 결국 이방인 제사장인 장인의 입에서 여호와 신앙의 고백이 이루어졌고, 이해할 수 없었던 모세의 결단을 이해하게 되었듯, 우리들에게도 그런 날이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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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출10:28)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9번째 재앙은 미리 바로에게 주는 경고없이 시작되었다. 10번째도 곧 바로 재앙의 선포로 시작되었다. 바로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 바로가 회개할 수 있는 남아있는 유일한 기회는 9번째 재앙이 임했을 때였다.
그들의 최고신인 태양신 "라(Ra)"도 야훼를 맞설 수 없음을 흑암의 재앙을 통해 분명해졌다. 이제 애굽엔 야훼와 경주할 선수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 아홉번째 흑암의 재앙 속에 바로는 모세를 부르게 되고 이때가 그가 더 끔찍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흥정하려 든다. 마지막 흥정은 "가축만은 두고 가라" 였다. 그렇게 해도 모세가 요지부동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모세를 위협하며 쫒아낸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신다. 그러나 언젠가 마지막 기회가 온다.
그의 흥정은 어리석었다. 이스라엘의 가축들에 욕심내다가 애굽인들의 장자들을 모두 잃었다.
그렇게 죄는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어리석게 만든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 버러지의 형상을 섬기게 하고, 장자의 직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기게 하며 가축을 욕심내다가 장자를 잃은 애가를 부르게 한다.
소탐대실! 바로는 이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고 애굽의 장자들을 잃었다.
죄는 사람을 고집스럽게 만든다. 그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 이 재앙들은 애굽인들의 신들과 연관성이 깊다. 이로 그들의 신들은 결국 재앙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보았고, 하나님을 견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음을 바로는 보았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회개를 거부한다. 모세를 쫒아냄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을 쫒아냈다. 알면서도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고집이며 인간의 어리석음임을 우리는 보게 된다.
다음의 구절은 바로의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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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출 8:25)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가 어쩔 수 없는 지점에서 마지 못해 허락하는데, "제사를 드리되 이 땅에서 드리라"고 한다. 후에는 "광야로 가긴 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28절)고 한다.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이다. 순종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때, 우리는 바로의 전략을 취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들을 체도 않다가, 이런 저런 하나님의 손길에 어쩔 수 없이 항복은 하게 되는데 "이땅에서" 혹은 "너무 멀리는..." 하면서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가 바로처럼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가 많다.
출애굽의 과정이 그렇듯, 우리의 성화의 과정은 하나님과의 씨름의 과정인지 모르겠다. 내 삶에 무엇인가를 내보낼 것을 결단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우리는 '조금만' '아직은..' 하면서 지연하려고 한다. 때로는 결심을 했다가 슬그머니 철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바로와 씨름하던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항복이 지연될 수록 댓가는 커진다. 바로는 결국 애굽 땅의 장자들의 죽음을 맛보고서야 항복하게 되는데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게 하나님과 씨름하곤 한다.
바울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은 하나님을 거스린다 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깨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바로가 우리의 산증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 삶에 출애굽의 영광을 이루시기까지 그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싸움을 거신다. 그리고 누구도 하나님과의 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