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15

악령

"그 악한 자는 나타나서 사탄의 힘을 빌려 온갖 종류의 거짓된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악랄한 속임수를 다 써서 사람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살후2:9-10, 공동번역)

스콧 팩 박사의 '거짓의 사람들'을 보면 그는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을 상담하면서 사람들의 상처 이면의 섬뜩한 악을 직시한다. 그는 악을 '거짓'으로 규정하는데, 거짓으로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거짓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음을 발견한다. 베트남 전에 참여했던 미군 병사들이 한 마을의 주민들을 참혹하게 살해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악의 실체가 우리들에게도 있음을 고발한다.

최근 도스또옙스키의 '악령'을 다시 읽었다. 군대귀신들린 성경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그의 글에는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사상들로 파멸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에게 당시의 사회가 군대 귀신 돼지떼로 보였던 것 같다.  거기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을 의도적으로 파멸시키는 이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언가를 불어넣어준 이가 있는데, 저자에겐 그가 악령이었다.   

오늘의 말씀은 마지막 때의 악한 자의 출현에 대해 말한다. 그는 불법의 사람이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하는 거짓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따라 진리를 거부한다. 악한 자는 "온갖 악랄한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멸망시킨다"(10절). 군대 귀신에 들린 돼지 떼가 낭떨어지기로 향하듯, 악한 자는 사람들을 그렇게 파멸시킨다.

성경은 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으며(7절), 악한 자의 힘의 근원은 사탄임을 말한다(9절). 우리가 처한 이곳은 영적 전장터다. 우리가 접하는 온갖 거짓들 속에서 악의 실체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상들, 생각들, 욕심들, 희망들로 낭떨어지기로 향할 수 있다. 사탄은 사람들을 그리로 유인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사용한다. 거기엔 악한 속임수가 있고, 악의 실체가 있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진리를 붙잡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들에서 우리를 놓이게 만들 것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4/16/15

물질에서 자유하기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1.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많다. 그런데 꼭 배워야하면서도 배우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자족하는 삶, 즉 물질에서 자유한 삶이다. 바울은 이것을 "배웠다"고 말한다(11절).

2. 우리는 기도나 말씀 등에 대해서는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물질에 대한 것은 배워야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나 말씀에 대한 것보다 물질에 대해서 더 많이 가르치셨다.  영적 지표는 물질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물질에서 자유한 삶은 없음과 있음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삶을 '가난' '궁핍' '고난'과는 연결시키면서도 '풍족함' '번영'과는 그렇게 않으려 한다. 번영만 추구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는 '번영'에 처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12절의 '풍부'에 처함은 영어성경에서는 'prosperity'로 표현되었다.

4.물질에서의 자유는 주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바울은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3절). 물질의 힘은 인간의 의지로 맞서기에는 너무나 강력하고, 유다처럼 예수님마저도 팔아넘기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우리는 물질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5.물질에서 자유한 사람의 특징은 주고 받는 일에 자유한 사람이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의 교제는 물질을 주고 받는 교제였다(15절). 물질에서 자유하지 못하면 주고 받을 수 없고, 성경적인 이 교제의 비밀을 누리지 못한다.

6.물질에서 자유할 때 사람들과의 인격적 교제가 가능하다. 바울은 선교를 위한 필요가 있었지만,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그들의 선물이 아닌 그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했다(17절). 그들의 관계는 부버가 말한 바 "I and it"의 관계가 아닌 "I and Thou"의 관계였다. 

7.물질에서의 자유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었다(19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우리의 현실에 뿌리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