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08

눅21장 호의와 업신여김

체포되신 예수님은 당대의 두 지도자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사람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반역죄로 고소합니다.
로마에 대한 세금을 반대했고, 로마가 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두번째 사안에 대해 물어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로마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예수님은 반역적인 주장을 한 것이 처벌받아야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빌라도는 "이 사람에게서는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헤롯에게 넘깁니다.

아마도 다른 복음서의 설명처럼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에 대해서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빌라도의 호의를 베푸는 심정으로 교회를 대하고, 기독교를 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의적으로 접근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호의와 구원은 다른 문제입니다.

반면 헤롯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경거리 정도로 여기고, "쇼"를 보는 기분으로 예수를 대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헤롯은 스스로 왕이라 주장하는 예수를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주의 왕되신 예수 앞에 헤롯의 왕권은 종이 왕권과 같은 것이지만, 헤롯의 업신여김을 예수는 그대로 받습니다. 
빌라도와 정반대로 교회, 기독교, 예수를 업신여기는 태도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와 헤롯은 예수를 두고 친구가 되었듯이, 호의와 업신여김은 그를 경배하지 않는한 차이가 없습니다. 호의와 업신여김은 친구일 뿐입니다.

12/08/08

나에게 완고함은 없는가?

누가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설교하고 가르치셨다.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반면 교회 지도자급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다.


하루는 예수님께 와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물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예로 반문하셨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무슨 권세로 기적을 행했겠는가?'

답은 분명했다.
이 사람들은 그 대답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들의 모순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리를 의식하고, 자기들의 모순을 알고 있으면서도 돌이키려 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해서 직면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하고자 하는 완고함을 보였다.
그리고 섬뜩한 것은 우리들에게도 이런 완고함이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완고함이 있지 않은가?

12/07/08

나귀를 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은 색달랐다.
이전처럼 조용한 입성이 아니라 왕의 입성을 연상시킨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입성전 마지막 비유가르침은 므나 비유였다.
므나 비유의 마지막은 "왕됨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였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였으리라.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서는 아무 갈등없이 받아들이지만
왕되신 예수님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갈등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으로 입성하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입성은 좀 우스꽝스럽다.
백마가 아니라 나귀라니...
그러나 이것까지도 예수님의 깊은 의도가 숨겨있는 것 같다.
왕이시되,  겸손한 섬기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왕됨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되 우리에게는 근접할 수 없는 왕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까이 갈 수 있는 왕으로 오신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BMW타시고 오신 것이 아니라 티코타고 입성하셨다.
폼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전달하시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누구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라가는 한가지 의미는 ACCEBILITY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