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14

자유와 배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

복음 안에서 우리에겐 "모든 것이 가하다". 율법적 신앙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많은 규정과 전통을 세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들이 후일 사람들을 매어놓는 속박의 끈이 되기도 하고, 더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필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고(갈5:1) 우리에겐 모든 것이 가하다. 

그리스인들은 이 자유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자유를 제한할 줄도 아는 배려의 사람이다. 

왜냐하면 모든 자유가 유익한 것도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내 자유가 남에게 거치는 것이 되고, 어떤 이의 양심에 거리낌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판단되면 자신의 자유와 마땅한 권리까지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모든 것이 가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닌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배려의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1/26/14

광야 까지만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공동의 경험이 있었다. 다 같이 시내산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구름아래 있었고, 다 홍해와 만나와 반석의 물을 경험했었다. 본문은 "그들이 다...했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가나안을 경험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다. 광야의 다수는 "광야" 까지만 함께 했다. 그 이후의 진짜 하나님의 축복의 땅을 경험하지 못했다.

같은 공동체에 있고,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사역을 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은혜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지만 그것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  

바울은 광야 이야기는 우리들을 위한 본보기라 말한다. 우리 역시 누군가와 공동의 신앙의 유산을 누리면서도 진짜 하나님의 축복의 땅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광야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의 경험은  "광야 까지만" 일 수 있다. 진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고 싶은 또 다른 하나님의 세계가 있음에도 말이다.

11/21/14

지식과 자유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해도 좋은가?"  어느 시대나 이런 질문을 만드는 이슈들이 있어왔다. 초대교회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음주와 흡연을 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 등이 제기되었었다.  

즉 어느 정도까지 자유가 허용되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자유는 지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말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기에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지식으로 고기 먹음의 자유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사랑이어야 한다. 위의 지식은 누구나 갖고 있는 지식이 아니기에(7절) 이런 지식을 갖지 못한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한다 했다(1절). 만일 우리의 지식으로 그런 지식을 갖지 못하는 형제들을 판단하고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지식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을 전통주의자라 몰아치며 자신이 개혁의 선두에 있는 것 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한다. 

교만의 해독제는 사랑이다. 우리와 같은 지식, 같은 믿음의 성숙에 이르지 못해도 그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11절)로 귀히 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교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랑의 한가지 정의는 다른 이의 약함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자제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런 사랑의 사람이었다.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13절).

우리도 그렇게 고백해야 한다.  '음식' 대신에 음주, 흡연, 골프 등 다른 것을 넣고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11/04/14

아, 십자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린도는 그리스의 한 도시다. 그래서 이들은 지혜를 중시했고 지혜로 모든 것을 가늠하고자 했다. 지혜가 그들의 잣대였다.

우리가 위치한 지역이나 살고 있는 시대는 알게 모르게 어떤 잣대를 제공한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한채 그런 잣대로 사람을 평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복음이나 그리스도를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잣대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려 해도 근본적으로 복음은 이 세상의 틀에 맞지가 않다. 그들에게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십자가의 도는 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드러내놓고 복음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지는 않는다. 대신 교회를 희화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오류를 소재삼는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근원적인 거부감이 숨어있다.

이 세상은 어느 시대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교회를 환영한 적은 있어도 십자가의 복음을 환영한 적은 없었다. 십자가는 어느 시대나 걸림돌이요 미련한 것이요,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기분 나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17절). 

11/03/14

상향 동일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침례)를 받았느냐?"(고전1:14)

고린도전서는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다. 인사말이 끝나자 마자 이들의 분열과 다툼을 질책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그 교회를 거쳐간 유명한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바울, 베드로, 아볼로 같은 지도자들을 겪으면서 교인들 중에는 선호 지도자의 "fan"이 생겨났고, 어떤 이들은 유명지도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자랑했던 것 같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침례를 받았다는 것도 자랑했던 것 같다. 우리들 중에는 누군가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나 어느 목사님의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자랑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상향 동일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가 추종하는 누군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유명인과 가까이 있다는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자칫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기 쉽다. 

누군가로부터 유명 백화점의 명품 코너에 있는 스텝들이 쉽게 스포일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하는 이들이 부한 이들이요, 건너는 물건이 명품이요 거래되는 액수가 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작은 돈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나의 나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온다. 그 어떤 관계도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의 나됨을 찾는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심은 나의 죄인됨과 나를 사랑하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건강한 사람은 정체성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어떤 이들과의 특별한 관계로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병들게 된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갈6:3)

11/01/14

사람들을 감사하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4)

고린도 교인들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들로 인해 감사한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도전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을까? 바울은 그렇게 했다. 어떻게 그런 감사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1.그들도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성도라는 사실(2절).  우리를 구원한 은혜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라 고백한다.

2.그들에게도 풍요한 은사들을 주셨다는 사실(5-7절). 이들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들에게 허락된 선물(은사)들은 우리 뿐 아니라 이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3.이들 역시 어느날 흠없는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주께서 이들을 굳게 붙잡고 도와주실 것이라는 사실(8절).  몇번이고 실망을 경험하면 우리는 사람들을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끝까지 이들을 붙잡고 이끌어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4.이들 역시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부르심 받았다는 사실(9절). 교제의 다른 말은 우정이다. 주님께서 이들을 친구로 부르셨다. 주님은 우리 뿐 아니라 이들과도 깊은 우정을 나누시고자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에 대해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