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11

교회의 순수성을 위한 고민

더9:5-19 말씀은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유다인이 비유다인을 살륙하는 현장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질문이 쏟아져나온다. 그러나 한가지 그 살륙의 장면을 기록하면서 성경은 유다인들이 다른 이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세번씩이나 강조한다. 이 부림의 전쟁이 거룩한 전쟁이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에스더서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종종 가장 거룩한 일들이 물질과 명예가 끼어들면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순수하게 시작되었던 사역들이 돈 문제에 관련되어서 추하게 변질되는 것도 많이 본다. 나는 목회자로서 교회에서 일체의 돈거래 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안타까운 사정, 절박한 사정 등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시작된 돈거래나 빌려주고 빌려받는 일, 혹은 사업상의 거래 등이 교회의 순수성을 해치는 경우들도 많이 본다. 좀 돌아가더라도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또 한편의 고민은 교회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보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물질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8/26/11

권력무상 인생무상

에스더 6:12-7:10에서 권력무상을 실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고의 권력과 실권을 누리던 하만이 하루 만에 나무에 달리는 신세가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며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은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다. 이 땅의 어떤 것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다. 소망이 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된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예수님은 '보물은 하늘에 쌓아두라'하셨다.

8/25/11

낙심하지 말자

에스더 6:1-11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모르드개가 왕의 모살음모을 듣고 보고했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당시에 모르드개 입장에서 인간적인 서운함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하만이 그를 모해하기 위해 왕의 알현을 기다리고 있던 그 때에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움직여 모르드개를 기억하게 하시고 보상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심은 그의 무관심이 아니라 더 큰 배려요 사랑임을 깨닫는다.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했다. 지금의 우리의 수고와 기도와 눈물의 씨앗은 하나님의 때에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오늘의 현장에서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것을 말씀하신다.

8/22/11

노블리스 오블리제

에스더 4:1-4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도전한다. 우리가 이땅에서 조금이나마 특권이나 축복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주신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민심을 잃은 이유는 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주신 축복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쓰지 못하고(아니 작은 시늉만 내고) 더 큰 건물과 제국을 건설하기 때문일 것이다.

8/19/11

하만 대 모르드개

더2:19-3:4 말씀에서 절개있는 신앙을 생각한다. 본문에 등장한 하만은 "아각" 사람으로 아말렉의 후손들이다. 하나님은 아말렉과는 대대로 싸우겠다고 맹세하셨다(출17:16). 왕은 백성들은 물론, 모든 신하들도 하만에게 절하도록 했는데, 모르드개는 자기가 "유다인"임을 들어 끝까지 절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자칫 자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왕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유다인이기에 아각사람에게는 절대 절할 수 없다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타협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절대로 무릅꿇을 수 없는 하만이 있다. 나에게 그 하만은 어떤 존재일까?

8/16/11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더1:13-21 말씀에는 왕후의 행동에 분노한 왕이 참모회의를 소집하고 결국 왕후 폐위까지 결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에스더가 등장하고, 유다민족을 구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본문어디에서도 하나님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당대 가장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던 절대군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오늘의 우리 삶의 주인공이기도 하신다. History는 His Story이다.

8/15/11

주인공은 에스더다

더1:1-12에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왕과 180일간의 화려한 파티와 초청된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왕비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에스더의 주인공은 에스더다. 이 시점까지 무명의 소녀였던 에스더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사람들이 정계에서 재계에서 각 분야에서 자기의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 역사의 주인공이다. 바울은 우리는 무명한 자같으나 유명하다 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같은 무명한 자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를 심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제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겨자씨를 통해서 확장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8/12/11

격려

행28:11-20 말씀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대사도 바울도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다. 로마 선교을 꿈꾸긴 했지만, 거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선교사의 입장이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그리고 유라굴로와 배의 파선 등으로 간신히 로마에 도착했다. 이미 바울에 대한 소문이 유대인 사회에 퍼져있어서 유대인의 위협도 예상되었고, 가이사에게 항소하긴 했지만, 어떤 판결을 받을지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하나님은 로마에 있는 다른 동료 형제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그를 격려하신다.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이 아직 로마 시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바울을 만나기 위해 달려나온다. 사도행전 28:15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지치고 지친 바울에게 이들의 격려는 바울의 로마에서의 선교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큰 일꾼이었지만, 그 역시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고, 로마의 형제들은 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나님은 종종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를 격려해주신다. 그들이 무슨 선물을 주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자 애쓰는 것만 보아도 힘이 되고, 그들이 신앙의 정도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만 보아도 격려가 되고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8/11/11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신다

행28:1-10말씀은 도움 주는 자가 아닌 받는 자, 은혜 베푸는 자가 아닌 받는자,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자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관문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도움주는 자의 자리에 있을 때 더 많은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의 바울을 포함한 파선한 배의 사람들은 섬 사람들에게 도움받고 돌봄받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기독교 야사는 바울 일행을 영접하고 돌봐주었던 이 가정은 초대 감독이 되어 후일 순교의 자리까지 갔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섬에서 돌봄을 받아야 했던 그들의 자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를 받는 그 자리가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들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물 좀 달라'는 도움요청자의 자리에서 복음전도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강함이 아닌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신다.

8/10/11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행27:38-44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유라굴라 태풍이 한창일 때, 모든 짐을 내버리고 여러 날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해도 별도 보지 못하는 그 때에 바울은 배는 파선하겠지만, 배에 탄 사람은 한 사람도 생명을 잃게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말씀대로 되어졌다.

때로 우리가 붙들고 있는 말씀이 실현가능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믿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이 아침,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신다. 주님께 찬양!

8/09/11

믿음은 실제적이어야 한다

행27장에서 보여주는 바울은 믿음은 매우 실제적이다. 그가 들은 음성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았다. 유라굴라의 광풍 앞에서 아주 실제적인 주의 음성을 들었다. 배는 상하겠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상하지 않게 될 것, 바울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해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말씀을 들었다. 그러기에 그의 믿음은 그 만큼 실제적이었다. 바울은 말한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줄 믿는다".

그의 믿음은 실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선포하는 믿음이었다. 그는 그가 듣고 확신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담대히 말했다. 14일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배의 모든 짐과 기구들 마저 버려야 했으며,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던 희망없는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바 말씀을 담대히 믿음없는 276명의 청중들에게 담대히 말한다. 그 배의 사람들은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는 그가 들은 바 말씀을 담대히 전한다.

나의 경우, 다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믿음도 추상적이다.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실제적인 주의 음성을 듣고 실제적인 믿음을 구사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자.

8/05/11

환영받지 못해도 가야하는 길이 있다.

행26:24-32말씀은 환영받지 못해도 가야하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바울은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주고 그의 말씀과 영향력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의 본문의 베스도 처럼 그를 미쳤다하고, 아그립바 왕처럼 바울의 전도시도를 비웃는,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세기와 같은 모진 박해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초한 사람들의 냉담함이야 우리가 고치면 되는 것이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영적 거부감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 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용기있게 말한다. "다...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리스도인됨의 댓가는 있지만, 그것을 상회하는 그리스도인 삶의 영광이 있고 기쁨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사람들을 찾아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신이 나와같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