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12

세 개의 탄식

로마서 8장에는 세개의 탄식이 나온다.

탄식1. 피조물들의 탄식.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22절).   탄식이 있는 것은 세상의 "허무함"(20절)과 "썩어짐"(21절)과 "고통"(22절) 때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세상 곳곳에는 탄식이 있고, 우리는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탄식2. 우리 몸의 탄식.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23절).  탄식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피조물로서의  허무함과 고통 뿐만 아니라 죄의 실재와 싸움을 경험하고 있다.  구원을 경험한다 해도 몸의 탄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그날 이루어질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몸의 탄식을 경험하게 된다. 

탄식3. 성령의 탄식.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 이것은 우리를 돕기 위한 탄식이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하지 못하고 마땅히 해야할 바를 하지 못할 때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그런데 그 기도는 탄식의 기도다. 성령님이 우리를 끌어안기 때문에 오는 탄식이다. 그러나 이 탄식의 기도로 인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된다" 

12/05/12

영광과 고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복음은 영광을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런데 죄로 말임아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되었다. 복음은 영광을 회복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장차 올 영광"(18절)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이다(17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이 땅의 어떤 것도 그것과 비교될 수 없음을 안다.

복음은 고난도 말한다. 우리에겐 영광만 약속된 것이 아니다. 고난도 예약되어 있다. 복음에는 영광과 고난을 함께 말한다. 복음은 우리 삶이 그저 평안하다거나,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주님과 함께 고난받는 삶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물론 고난의 몫은 각자마다 다르다. 선교지에서의 삶도, 이민목회의 삶도, 그리고 한국에서도의 삶도 고난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남겨주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다. 이 고난을 묵묵히 담당하며 그리스도를 따를 때 언젠가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12/04/12

적대감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롬 8:7, 새번역)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기에 신을 필요로 하면서도 또 한편 인간은 본성상 무신론적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본능적 거부감이 있다. 왜 인간은 하나님께 적대적일까?
 
자유의 문제.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구속받기 싫어한다. 스스로 주인이 되기 원한다. 하나님 없는 자유를 원한다. 성경은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혐오한다. 창세기 타락이야기는 하나님을 부정함으로 자신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이야기다. 뱀의 유혹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는 이야기다. 죄는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의 문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사랑은 욕심이 될 수도 있고 우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랑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될 수 있다 경고한다. 성경은 우리의 사랑도 경계선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본성상 이 경계선을 싫어한다. 선악과를 탐하듯이 경계선 너머의 사랑을 탐한다. 이것을 죄라 단정하는 하나님은 싫을 수 밖에 없다.

12/02/12

생각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5)
 
영성의 길은 생각의 길이다. 가룟 유다의 배반은 생각으로 시작되었다(요13:2). 예수님이 자신이 받을 수난을 미리 예고하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류하였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단아 물러가라”고 엄하게 책망하시며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했다(마 16:23).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마귀는 어떤 생각을 주어 우리를 넘어뜨린다. 성령님도 어떤 생각을 주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