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12

이스라엘, 남은 자, 교회

로마서 9-11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 11:1-10은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바울의 대답은 Yes and No이다. 혈통적 의미에서의 이스라엘 전체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남은 자"들이 있다.

똑같은 질문을 오늘의 교회에게 해본다. 이스라엘 처럼 교회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신학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남은자 원리는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교회의 이름을 가진 모든 교회가 다 쓰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형식주의로 화석화되었고, 어떤 교회는 교리적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렸고, 어떤 교회는 영성이 죽어버렸고, 어떤 교회들은 복음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남겨두셨고 그 "남은 자"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곤 하셨다.

과거 이스라엘에 종교적 제사와 직함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버림받았듯이 오늘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과 행사와 조직과 인기가 있는 설교가 있다해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오늘의 본문에서 또 한가지 깨달음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사상이다. 엘리야 시절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은 하나님이 남겨두신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지금도 하나님이 선택한 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 "은혜의 선택"(11:5)이라고 불렀다.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남겨두신 이 은혜는 우리를 두렵게하고 또 겸손하게 만든다.

6/17/12

은혜의 영토

그리스도인에게 은혜는 구호가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이요 영토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롬5:2).

그리스도인의 삶은 은혜의 영토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된 것도 은혜요(롬5:1), 하나님의 영광을 약속받은 것도 은혜요(롬5:2), 그 영광 때문에 현재의 고난까지도 즐거워하게된 것도 은혜다(롬5:3-4). 그런데 이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붙잡아야할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믿음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우리는 이 은혜를 누리게된다. 바울은 은혜의 영토는 믿음으로 서 있어야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2절상)

둘째 소망이다. 현재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언젠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될 것을 계속 바라보아야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절하)

셋째 인내다. 은혜의 영토에도 환난은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환난이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하는 하나님의 손길로 본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내하며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연단을 잘 견딜 때 언젠가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3-4절). 우리들은 환난도 하나님의 훈련장으로 보기 때문에 환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3절)

6/16/12

그리스도인의 영광

우리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최종목적은 우리의 영광이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영광은 무엇일까? 바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롬8:29)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모해야할 우리의 영광이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문맥에서는 고난을 의미)을 합력해서 선을,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어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영화로운 존재가 되게하시기를 원하신다(롬8:28). 할렐루야!

6/15/12

도우심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꼭 만날 수 밖에 없는 단어들을 롬8:19-27에서 발견하게 된다 : 허무(20절), 썩어짐(21절), 탄식(22절), 고통(22절).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승리하게 만드는 단어들도 만나게 된다: 영광(21절), 소망(24절), 도우심(26절).

6/03/12

영적 침식

"어떤 사람도 갑자기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영적인 침식은 점진적으로 서서히 파괴되면서 일어난다"
F.B 마이어(Meyer)

"실로 지옥에 이르는 가장 안전한 길은 점진적인 길이다. 급회전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표지판도 없는 부드럽고 완만한 비탈길이다"
C. S. 루이스(Lewis),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6/01/12

상징과 본질

우리는 종종 상징으로 본질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한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할례와 믿음에 대해서 말하면서 할례는 우리가 가진 믿음의 상징일 뿐이라 말한다(11절. "..he received circumcision as a sign").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목숨을 걸만한 신앙의 본질로 여겨졌고, 자신들이 할례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자랑하였다.

존 오트버그 목사는 경계선 신앙에 대해서 말한바 있다. 종종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경계선을 단지 술담배안하는 것, 주일성수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인됨의 진정한 경계선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Sign에 불과하다. 본질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요,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의 관계이다.

이렇게 본질과 상징을 구별하는 지혜를 가질 때, 비본질을 본질처럼 주장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