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1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 11:1-10은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바울의 대답은 Yes and No이다. 혈통적 의미에서의 이스라엘 전체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남은 자"들이 있다.
똑같은 질문을 오늘의 교회에게 해본다. 이스라엘 처럼 교회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신학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남은자 원리는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교회의 이름을 가진 모든 교회가 다 쓰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형식주의로 화석화되었고, 어떤 교회는 교리적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렸고, 어떤 교회는 영성이 죽어버렸고, 어떤 교회들은 복음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남겨두셨고 그 "남은 자"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곤 하셨다.
과거 이스라엘에 종교적 제사와 직함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버림받았듯이 오늘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과 행사와 조직과 인기가 있는 설교가 있다해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오늘의 본문에서 또 한가지 깨달음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사상이다. 엘리야 시절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은 하나님이 남겨두신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지금도 하나님이 선택한 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 "은혜의 선택"(11:5)이라고 불렀다.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남겨두신 이 은혜는 우리를 두렵게하고 또 겸손하게 만든다.
똑같은 질문을 오늘의 교회에게 해본다. 이스라엘 처럼 교회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신학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남은자 원리는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 이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교회의 이름을 가진 모든 교회가 다 쓰임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교회들은 형식주의로 화석화되었고, 어떤 교회는 교리적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렸고, 어떤 교회는 영성이 죽어버렸고, 어떤 교회들은 복음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남겨두셨고 그 "남은 자"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곤 하셨다.
과거 이스라엘에 종교적 제사와 직함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버림받았듯이 오늘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과 행사와 조직과 인기가 있는 설교가 있다해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오늘의 본문에서 또 한가지 깨달음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사상이다. 엘리야 시절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은 하나님이 남겨두신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지금도 하나님이 선택한 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 "은혜의 선택"(11:5)이라고 불렀다.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를 남겨두신 이 은혜는 우리를 두렵게하고 또 겸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