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14

분배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삼상30:24)

다윗 일행은 아말렉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짐승들을 모두 구했을 뿐 아니라, 전리품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전리품 분배의 문제였다.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에게만 나누주자는 의견들이 강했지만, 다윗은 전장에 내려갔던 자나 남아서 소유물들을 지켰던 이들이 동일하게 분배받아야 한다고 했고, 이것을 이후 모든 전투의 교범으로 삼았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원칙이라 믿는다. 선교사로 참여했던 이나 본국에서 후원하는 이들 중 누가 더 상이 클까? 나는 '분깃이 동일할지니...'라는 원칙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충성하는 것이지, 선교사나 목회자가 더 큰 상급이 보장된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상급은 어떤 사역을 하였는가가 아닌 부르심에 얼마나 충성했는가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역을 하였다고 프라이드를 가져서도 안되고 본국이나 이민목회를 하는 이들이 더 열등한 사역과 헌신을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이것은 또한 교회 공동체 사역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전장에 나갔던 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이들은 모두 한 팀이다. 공동체의 어떤 이들은 사역의 어떤 전리품들을 얻는다. 사람들의 칭찬과 사역의 성취와 업적들은 모두에게 나눠져야 한다.  그것이 지체의 원리요 공동체 정신이라 믿는다.

4/05/14

인내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삼상28:1)

다윗 스토리에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가 이곳이다. 사울을 피해다니다 지친 다윗은 또 다시 블레셋으로 피신한다. 이미 한번의 경험으로 그곳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았지만 그곳을 피난처로 선택한다.

그런데 곧 이어지는 사울의 이야기는 그의 멸망의 시작을 보여준다.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는데, 다윗이 조금만 더 인내하였더라면 블레셋에서의 어려움과 곤경을 겪지 않았아도 되었던 것이다.

다윗의 블레셋 행으로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 등을 살륙하는 현장에 있어야 했고, 증거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였다"는 잔인성을 보여야 했고,  블레셋 왕에게 거짓을 말해야 했고, 오늘 본문처럼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는 블레셋의 이스라엘 침공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의를 받게 되고, 곧 이어 그들이 참전한 사이에 시글랏에 남겨진 가족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가는 위기를 경험해야 했다.

조그만 더 인내하였더라면 치루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값지불했다. 잠시 후면 사울의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다윗은 블레셋 행을 결심하게 되고 이로 인해 더 큰 곤경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고난 속에 있는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실수다.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인내하고 기다리다 낙심하게 되고, 나름 우리들의 살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고 만다. 

다윗은 조금 더 인내했어야 했다. 동일하게 고난을 견디다 결국 이탈하고 있었던 당시의 신자들을 향하여 히브리서 10장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잠시 잠깐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라..." 말한후 인내가 곧 믿음임을 말한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4/03/14

어필(appeal)의 기술


"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삼상 26:18)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이에 대립할 수도 있고 그냥 참고 지낼 수도 있다. 오늘의 다윗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윗은 사울의 무고한 핍박에 맞서지 않고 우선은 피해다녔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변호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다윗이 자신의 입장을 사울에게 호소하고 일시적이나마 효과를 거둔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무고한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복음에 대해 변증할 것을 말한다. 바울도 복음으로 말미암은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또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신과 복음에 대해 변호했다.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억울한 오해와 처사를 경험할 때도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변호와 어필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이 지혜를 배울 수 있다.


1. 항상 예의를 지킬 것. 억울한 일을 당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평소의 온화한 사람들도 격한 말들을 쏟아내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다윗은 사울에게 어필하는 과정에서 사울의 권위에 도전이 되는 언행을 하지 않고 자신을 사울 앞에 작은 벼룩으로 낮추며 신하로서의 예의를 다한다.


2.자신의 무고를 사실에 입각하여 말할 것.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대적하거나 해하고자 하지 않고자 하는 자신의 진심을 물병과 창을 근거로 입증한다. 사울을 해할 수 있는 완벽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아니하고 물병과 창만 가지고 왔음을 말하며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


3.문제에 집중하고 절대로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 것. 오늘의 본문에서 다윗은 사울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의 무고를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난과 비판은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4. 인간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차원에서 조명해 볼 것. 다윗은 사울의 추격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를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땅을 떠도는 자가 되었음을 조명하며, 이 일이 자신과 사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도 연관됨을 시사한다. 

4/02/14

기회와 원칙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삼상26:8)

다윗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사울의 캠프에서는 모두가 잠들어있었고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이 잠들어있는 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사울을 죽일 수 있었다. 아비새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한다.

너무나 절묘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비새도 상황을 그렇게 해석했다. 우리는 특히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떼 이렇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시험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중요하다. 모든 열린 사황이 다 하나님의 기회는 아니다.

다윗은 그 기회를 사울을 제거하는데 쓰지 않고, 자신의 충성심을 보이는데 사용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왔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일 수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사울을 처리하실 것을 믿고 있었다. 그가 병들어 죽게되든지 전쟁터에 죽게되든지 하나님이 직접 처리하실 것이지만 자신이 직접 그를 제거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사울을 직접 제거하지 않는 것을 그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와도 그의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는 시험이다. 불리한 상황도 시험이고 오늘의 본문처럼 유리한 상황도 시험이 된다. 그런 상황들에서 우리가 믿음과 원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4/01/14

모욕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삼상25:39)


사울의 핍박에서 승리했던 다윗은 나발의 모욕으로 커다란 실수를 할 뻔 했다. 다윗 자신도 나발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악한 일"이라고 부른다. 나발이 준 모욕으로 다윗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모아서 나발을 몰살시키려 했다.

종종 인생의 큰 싸움에서 승리한 이가 작은 싸움에서 패배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울의 핍박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에도 그는 자신을 지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나발의 문제는 작은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에 자신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을 본다.

인생의 초조감이 우리로 커다란 실수를 하게 할 수 있다. 사울을 피해 다닌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언제 도망자의 여정을 끝낼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평생을 그렇게 쫒기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는지 모른다. 이런 시기에 듣는 말 한마디는 결정타가 되고 우리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도 한다.

더군다나 현재의 다윗의 생활은 불안정했다. 한때 "다윗은 만만이요"라는 백성들의 칭송은 벌써 예전 기억이 되고 있었다. 나발에게 먹을 것을 부탁해야할 만큼 삶은 고단해지고,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을 섬겼던 경험에서 발견한 한 가지도 바로 다윗의 나발 사건이다. 한국에서의 풍요로운 기억과 달리 언어의 장벽으로 이민생활에서 육체적인 노동 등에 종사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 작은 말 한 마디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태풍처럼 다가오는 경우들을 많이 목격했다.

오늘의 스토리는 아비가일의 기지로 나발은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재앙을 피한 사람은 오히려 다윗이다. 이때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그의 선한 명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다윗의 무리는 한낱 강도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셨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치명적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런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해주셔서 우리를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개입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삶에도 이런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