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14
9/23/14
다니엘에게 기도란? 9월 23, 2014
9/22/14
직장인 다니엘 9월 22, 2014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단6:3)
시대가 바뀌어 바벨론은 패망하고 메대바사제국이 들어섰다. 다니엘은 새로운 제국에서 3인의 총리중 하나로 임명되었다. 다니엘이 유대인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왕들마다 그를 높히 쓰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다니엘서 6장에서 직장인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1. 탁월성. 성경은 다른 이들보다 다니엘이 뛰어났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실력과 탁월성을 보였고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에서 추구해야할 바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있으되 맡겨진 일에 전문성이 없으면 비그리스도인 직장동료들에게 간증을 남길 수 없다.
2.도덕성. 사람들은 다니엘을 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다"(4절). 그리스도인들도 부정에 연루되어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은 안타깝다. 사람들은 다니엘에게서 인사문제든 돈에 관련된 문제든 어떤 부분에서도 부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3.성실성. 성경은 다니엘이 '충성되었다'(4절)라고 말한다. 충성의 다른 말은 성실이다. 맡겨진 일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실하게 임하여 그 일에 태만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다니엘의 업무에 있어서도 허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4.영성. 사람들이 유일하게 허물을 찾고자 했던 것은 그의 신앙문제였다.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5절) 그의 정적들은 음모를 꾸몄다. 이는 주변사람들에게 다니엘이 신앙에 있어서는 어떤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나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나 직업의 현장은 치열하고 그 가운데 생존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 치열함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쉽게 타협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직장세계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보여주었던 다니엘은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모습이다.
9/20/14
무명한 자 같으나 9월 20, 2014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단5:29)
다니엘이 손 글씨의 뜻을 해석한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했다(30절). 죽기 전 그가 한 일은 다니엘은 높혀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세운 일이었다.
느브갓네살은 그의 꿈을 해석한 다니엘을 높혀 "바벨론의 온 지방을 다스리는 자"로 삼았었다(단2:48). 그후 왕위가 바뀐었고 다니엘의 위치에도 변화가 있었던 듯 하다. 그러다가 벨사살이 이 일로 그를 다시 높혀 셋째 통치자로 세운 것이다.
그후 바벨론은 메데-바사제국에 정복당하고 바벨론의 셋째 통치자 다니엘은 새로운 제국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는다. 그렇게 그가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벨사살이 죽기 전 그를 높혀주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서에는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이 나온다. 바벨론의 등장과 패망, 메데-바사 연합제국, 바사 제국, 그리고 세계사에서 듣던 제왕들의 이름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다니엘이란 사람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읽고 있다.
세계사적 제왕들에 비해 다니엘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제왕들이 다니엘을 위해 쓰임받았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벨사살,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다리오 왕을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반대로 이들은 다니엘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도록 도움을 주었던 이들이다.
그리보니 그 제왕들 보다 다니엘이 크게 보인다. 바울은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라고 말한 바도 이런 뜻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명한 자들이다. 정가나 재계에 우리의 이름을 내놓지도 못하고 혹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위치에 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역들이며 필요하면 하나님은 세계사적 인물이라도 우리를 위해 쓰신다.
9/19/14
진실을 말하기 9월 19, 2014
9/18/14
과시 9월 18, 2014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단5:2)
벨사살이 천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연회를 베풀고 예루살렘 성전 그릇들을 술잔으로 사용한 것은 바벨론 제국의 왕으로서의 자기 과시였다.
사람들은 크기로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대형 이벤트, 대형 모임, 대형 프로젝트, 대형 건물 등을 좋아한다. 크기가 능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크기가 아니라 생명력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같다 하셨다. 지극히 작지만 생명이 있기에 자라나 뭇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된다. 누룩과 같다 하셨다. 생명이 있기에 온 그릇에 퍼져나간다.
반면 크기로 자신들을 과시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벨탑이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크기로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바벨탑은 엉뚱하게도 사람들의 작은 혀가 꼬이는 지극히 작은 일로 무너진 것은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누리는 대형화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벨사살의 과시는 곧 이어 바벨론이 무너질 것을 알지 못하는 헛된 과시였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바닷가 자기가 쌓아놓은 모래성이 얼마나 큰가를 자랑하는 격이다.
정복한 예루살렘의 성전 그릇을 술잔으로 사용한 것은 그들에겐 소수민족으로 보였던 유다민족의 신보다는 거대한 바벨론 제국의 신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유다민족의 작음이 그들이 섬기는 히나님의 작음이 아니다. 우리는 크기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크기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오히려 작은 민족을 통해 메시아를 탄생시키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책으로 전달하셨고, 십자가 사건의 현장이 되게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작은 자들을 통해 큰 일 이루시는 간증집이다. 다윗, 예레미야, 기드온, 베드로...한결같이 작은 자들이었지만 크신 하나님으로 인해 위대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보이는 크기를 과시하는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진정 위대한 자다.
9/17/14
마음 얻기 9월 17, 2014
9/16/14
그루터기 9월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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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9월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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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개입 9월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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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신상 9월 11, 2014
9/08/14
제국과 바위 9월 08, 2014
9/05/14
기도의 모험 9월 05, 2014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단2:19)
기적적인 기도응답이 이루어졌다. 느부갓네살의 꿈의 내용을 알게해달라는 기도가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다니엘은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하실 수 있는 것들에 놀라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기대감을 생각케 한다.
믿음은 기대감이다. 나사렛 고향사람들은 목수 예수에게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다. 그래서 나사렛 동네에서는 아무런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예수께 대한 우리의 기대감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영역이 기도다. 예수님을 정말 기대하면 기도한다. 즉 기도는 우리가 실제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기도란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요청하는 것 이상이다. 다니엘의 경우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것까지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통로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한 기도제목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용기를 내어 기도하는 모험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것들을 이루실 수 있는지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그렇게 기도의 모험을 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