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0

네가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대면의 대화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반석이라 불릴 것이라 말씀하신다.  게바란 뜻이 반석이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발견하는 베드로는 여전히 시몬이다. 반석같은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좌충우돌이요, 충동적인 시몬이다.
그러나 좀더 시간이 지나 사도행전이나, 베드로전후서에서 발견하는 베드로는 반석이다. 예수님은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장차되어질 우리의 가능성을 보신다. 시몬에게서 게바를 보신다. 현재에서 미래를 보신다.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서 장차의 변화될 모습을 보아주신다.



1/18/10

하나님께 가는 길은 함께 가는 길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함께'하심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은 '함께'있음을 즐기시는 분이시다. 함께있음이 하나님의 본질이라면, 하나님께 가는 길은 함께가는 길이다. 하나님과 함께있기,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기... 이 길이 하나님을 배우는 길이다.

1/16/10

만나와 가나안의 소산


여호수아 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장면이 나온다.
무교절 떡을 먹을 때, 가나안의 곡물을 사용해서 무교병을 만들어 무교절을 지켰다.
광야시대에 하늘의 만나만 먹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에서 나온 소산물을 처음 먹게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때 하늘의 만나는 더 이상 내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만나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소산물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자.
하늘에서 기적적으로 내려지는 하나님의 공급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수고와 땀을 통해서 얻어지는 소산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기적의 만나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땀과 수고를 통해 얻게 되는 소산물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이 두가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공급의 손길이다.

1/08/10

QT나눔 : 라합에게서 배우는 세가진 신앙기초


여호수아 2장은 라합의 스토리에 전체를 할애한다.
가나안 정복의 거대한 물결 속에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에 한장 전체를 할애함은 라합의 이야기가 줄 수 있는 중요성 때문이리라.
라합의 이야기는 세가지 신앙의 기초를 이야기 해준다.

첫째, 신앙은 은혜라는 것이다.
라합은 가나안 원주민, 이방 여인이었다. 더군다나 몸을 파는 매춘부였다. 그러나 그가 후에 여리고성 정복시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메시아의 선조가 된다. 이것은 한마디로 은혜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없었던 이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도무지 그럴 만한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생각될 수 없는 이에게 하나님은 놀라은 영예를 안겨주셨다.  신앙은 은혜이다.

둘째로 신앙의 기초는 믿음이다.
라합은 스쳐지나가는 소문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홍해를 갈라놓으셨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혼왕과 옥 왕의 나라를 정복했는지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문에 '간담이 녹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러나 라합은 단지 두려움만 가지고 있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다. 하늘 위에도, 땅 위에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라합은 이 믿음 때문에 정탐꾼들을 숨겼다. 라합은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히브리서 11장은 라합을 믿음의 여인으로 표현한다. 그저 스처지나갈 수 있었던 소문, 그러나 라합은 이를 믿음으로 승화시켰다.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어떤 믿음을 원하시는 것일까?

셋째로 믿음은 행동이다.
야고보서에서 라합은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라합의 믿음은 마음 속에만 머물지 않고 정탐꾼을 숨겨주는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 이것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에 상반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참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했다.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고 거짓 믿음이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믿음이 전혀 내게 새로운 삶의 행동패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나는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음은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