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09

창31장 결단이 필요할 때

야곱은 드디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야곱이 이렇게 결단을 내리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큰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1-2절을 보면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라반이 전과 같이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야곱의 가축떼는 점점 불어나는 것에 대해서 라반의 가족들이 불편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 한가지 이유는 관계입니다. 때로는 같이 있음으로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야곱 자신도 라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라반이 10번이나 품삯을 바꾸었다는 것이 야곱의 마음에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에게 이야기할 때도, 자기 아내들에게 이야기할 때도 이 문제를 자꾸 끄집어냅니다.

이러할 때가 우리에게 어떤 결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을 때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움직이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시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이 말씀앞에 응답하게 됩니다.

셋째는 가족이 동의할 때입니다.
야곱은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서 두 아내들과 의논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야곱의 계획에 동의합니다. 내 결단이 한 가족에 깊은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가족들의 동의와 후원이 있을 때가 결단의 적당한 때입니다. 나는 결단의 준비가 되어있는데, 가족들이 준비되어있지 않을 때는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가족이 같은 마음으로 움직일 때, 그리고 결단을 함께 내릴 때가 적당한 때입니다.

4/14/09

에서의 눈물


창세기 27장에는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서는 사냥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이미 그가 받을 축복은 동생이 가로챈 상태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게 된 과정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속임이 있었고, 술수가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 한가지는 이삭은 이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무효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때때로 인간사의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삭의 계획은 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되어진 과정을 통해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가 된 것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나의 계획이 어긋나는 상황에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래 계획하지 않은 야곱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의 에서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수용해야되는 야곱은 무엇일까요?

4/03/09

빌립보서 4장 스스로 만족하는 삶의 비결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당시에는 나이가 많이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4:11에서 자기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 한가지는 "자족하는 삶"입니다.
자족한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이지요?
12절에서는 이것을 인생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 중에 꼭 배워야하는 한가지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삶의 비결을 배울 수 있을까요?

첫째는 Something의식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과거에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기도 했고, 스데반의 죽임이 율법적으로 합당한지 판단하는 판정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금 자기의 입장을 비참해 한다면 만족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 다른 이들과 "we-feeling"을 가질 수 있는 인간, Something이 아니라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 아는 겸손한 사람이 자기 삶을 수용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의 현재를 하나님의 소명의 자리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저기 선교하던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를 감옥에 있게 하시는 것보다 더 멀리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자유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유익이라 판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1장에서 자기의 매임과 투옥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 이해가 안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무언가 뜻이 있어서 나를 이곳에 두셨다는 소명의식이 있다면 척박한 감옥이라 할지라도 의미를 갖게 되고, 만족을 배우게 하십니다.

셋째는 우리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고난이며, 시련은 시련입니다. 인간적으로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우리 안에서 능력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