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14

거꾸로 읽는 한나 이야기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1:7)

위대한 사무엘의 이야기는 위대한 비전과 꿈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위대한 사무엘의 이야기는 한나가 민족을 품고, 시대의 종교적 타락을 한탄하는 기도로 시작되지 않았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의 어머니 한나와 아버지의 또 다른 첩 브닌나의 갈등과 경쟁과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위대한 자식을 만든 위대한 어머니의 고결한 성품이나 위대한 비전이나 그 어머니의 비이기적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그들의 이야기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다.

분명 비전은 필요하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작하실 때 우리에게 소원을 주신다(빌2:13). 그 소원이 우리의 비전과 열정이 되어 결실을 맺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소원과 비전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의 과정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들의 이야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그림을 보여주실 때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고 비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고상한 요셉의 비전이나 꿈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극히 문제 많은 야곱의 편파적 양육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요셉에게 어느날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이 실현되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의 이야기다.

사무엘의 이야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것이 희망이 된다. 우리들의 리얼한 삶의 이야기에 하나님은 개입하시고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들의 망쳐진 캔버스에 위대한 명작을 그려가신다.

아니 살펴보면 성경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들의 위대성보다는 그들의 문제점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다.

그것이 희망이 되고 복음이 된다.

1/13/14

망각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오늘의 묵상본문인 야고보서 4:11-17에서 두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비방하지 말라. 둘째 자랑하지 말라.

대부분의 오류가 그렇듯이 비방과 자랑은 자기를 망각하는데서 오는 잘못이다. 

비방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판단자가 되시고 우리는 누구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은 존재임을 망각하는 것이요(11-12절), 자랑한다는 것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안개같은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다(13-16절).

올바른 관계는 올바른 자기 존재인식에서 시작한다. 반면 죄는 우리의 자기인식을 오염시킨다. 사탄은 최초의 여인에게 '네가 하나님같이 되리라' 유혹했다. 죄는 되지도 못할 것을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임을 망각하게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는 곳이다. 자신이 의롭다는 인식과 스스를 구원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신감이 죽는 곳이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 우리의 존재를 보여주는 곳이다. 

죄는 수시로 우리를 망각케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을 망각하고 형제를 비방하고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 처럼 자랑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다.

1/10/14

지혜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13)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 중에 하나는 '지혜롭다'는 평판이다. 그러나 지혜는 도덕성, 혹은 영성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이다. 

개인의 영적 성숙과 상관없이 지혜롭게 처신하거나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깊은 영성이 없어도 교회의 일을 지혜롭게 해낼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교회의 일꾼 선정의 기준이 삶이나 영성이나 기도나 믿음 등보다는  얼마나 "야무지게" 일을  잘 해내느냐 하는 것으로 하락해 버리고, 이는 전반적인 교회 영성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혜가 영성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혜가 독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질투심이나 탐심으로 발동된 지혜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13-14절)이라 말한다.

종종 우리의 지혜가 내 이기심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질투하는 대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지혜가 나를 내세우거나 나를 자랑하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혜가 남을 깎아내리고 사람들을 우습게 만드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야고보서가 쓰인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지혜자가 교회의 일꾼들이 되면 교회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난다(16절). 사실 교회의 어려움은 지혜롭다 하는 이들로 인해 발생한다. 그들에게 각가지 경험에서 온 지혜가 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에 무지하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기에 이들의 지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한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경건한 지혜자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1/04/14

좋은 일과 나쁜 일

우리는 살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의 묵상본문 약1:9-18은 이에 대한 세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좋고 나쁜 일은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9-10절)

부하게 사는 이가 있고 가난하게 사는 이가 있다. 높아진 자가 있고 낮아진 자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언젠가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다윗이 자기를 일깨우는 반지를 만들고자 했을 때 세공인은 솔로몬의 지혜를 빌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를 넣었다 한다.  

둘째, 아무리 나쁜 일도 잘 참아내면 복이 된다는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12절)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 시험거리가 생기는 것 자체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중병에 걸리고 자녀들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등의 어려움 등이 있다 해서 세상에서 루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루저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냥 주저 않는 것이다.

시험은 결코 좋은 일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참아내면 그 시험이 내게 복이 된다.

셋째,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17절).

어느 교부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라 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자랑할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각각 우리 신앙의 테스트 용지가 된다. 좋을 일이 일어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나쁜 일이 일어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내 신앙의 테스트가 된다.

1/01/14

순종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1:4)

새해 첫 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땅은 그들이 실제로 취한 땅보다 몇십배 더 넓은 땅이었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작은 영토를 가졌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계획보다 작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아니한가? 내 인생의 좁은 경계선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무조건적인 확장주의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라'는 성구가 우리들의 야심을 비전으로 둔갑시키는 근거로 사용되는 예를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축소지향도 경계해야 한다. 성장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은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한다. 요즘 교회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에서 그런 축소주의를 발견한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은 크기가 아니라 순종이다. 얼마나 크고 작은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게획에 순종하며 살았는가이다. 

2014년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예'하는 순종의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