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2:17-30은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복음의 도구들로 활용하심을 보여준다. 바울의 로마시민권은 복음 전도사역에 유용했다. 명예심으로 학위를 추구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위나 특별한 경력을 복음을 위해 추구할 때 아름다운 도구가 될 수 있다.
7/26/11
7/18/11
교회 연합 7월 18, 2011
행20:1-2에서 성경은 교회 연합에 대해서 교훈한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근에 이방교회들이 헌금함으로써 이방교회와 유대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확증하기 원했다. 그래서 갈라디아, 소아시아 교회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까지 참여하기 원하여 에베소 두란노 사역이 끝난 후 마게도냐 교회들을 거쳐 고린도에 3개월간 머물며 예루살렘 구제헌금 요청을 마무리한다. 여기에 참여한 교회들이 행20:4에 나와있는데, 각 교회는 헌금 뿐 아니라 헌금수송자들도 함께 파송했다.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베뢰아 교회)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데살로니가 교회)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갈라디아 교회)
아시아 사람 두기고(골로새 교회)
드로비모(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는 명단에 빠져있는데, 바울에게 헌금을 의탁했는지, 아니면 참여하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한가지는 고린도 후서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적인 헌금생활을 칭찬했는데 마게도냐 교회 중 빌립보 교회가 명단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 바로 "우리"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동행여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우리"는 2차 선교여행중 빌립보 선교까지 등장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마도 누가는 계속 빌립보 교회에 남아 빌립보 교회를 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각 교회 대표들이 드로아(트로이)에서 집결했을 때 여기에 함께 집결했다. 빌립보 교회는 누가의 편에 헌금을 전달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공동선교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함께 연합하는 아름다운 모델을 보여준다.
또 바울은 각 교회로 부터 헌금을 본인이 다 수송하지 않고 각교회 대표들이 헌금을 수송하도록 함으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성도들이나 외부인들에게 헌금 문제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트로이에서 보여 함께 성만찬을 하며 예배를 드리고 밤이 새도록 교제했다. 바울이 그동안 선교했던 각 교회의 일꾼들과 함께 드리는 최초의 연합예배였던 셈이다. 아마도 바울은 이 예배를 드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그동안 고난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 각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며, 그 교회들이 이제는 또 누군가를 돕기 위해 헌금하는 자리까지 교회가 성장해 온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으리라 믿는다.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133:1)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베뢰아 교회)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데살로니가 교회)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갈라디아 교회)
아시아 사람 두기고(골로새 교회)
드로비모(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는 명단에 빠져있는데, 바울에게 헌금을 의탁했는지, 아니면 참여하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한가지는 고린도 후서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신적인 헌금생활을 칭찬했는데 마게도냐 교회 중 빌립보 교회가 명단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 바로 "우리"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동행여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우리"는 2차 선교여행중 빌립보 선교까지 등장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마도 누가는 계속 빌립보 교회에 남아 빌립보 교회를 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각 교회 대표들이 드로아(트로이)에서 집결했을 때 여기에 함께 집결했다. 빌립보 교회는 누가의 편에 헌금을 전달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공동선교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함께 연합하는 아름다운 모델을 보여준다.
또 바울은 각 교회로 부터 헌금을 본인이 다 수송하지 않고 각교회 대표들이 헌금을 수송하도록 함으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켰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성도들이나 외부인들에게 헌금 문제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트로이에서 보여 함께 성만찬을 하며 예배를 드리고 밤이 새도록 교제했다. 바울이 그동안 선교했던 각 교회의 일꾼들과 함께 드리는 최초의 연합예배였던 셈이다. 아마도 바울은 이 예배를 드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그동안 고난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 각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 함께 연합예배를 드리며, 그 교회들이 이제는 또 누군가를 돕기 위해 헌금하는 자리까지 교회가 성장해 온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으리라 믿는다.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시133:1)
7/15/11
영적 분별력 7월 15, 2011
행19:23-29말씀은 영적 분별력의 필요를 느끼게 한다. 때로 사람들의 대의 명분과 실제 이유가 다를 때가 많다. 에베소 도시의 아데미 신상을 만들던 이들이 흥분했던 이유는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금전적 이유였다. 그들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세웠던 이유는 종교적인 대의명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일반 사회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갈등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들이 진짜 이유가 아닌 경우가 많다. 속내는 숨겨지고 밖으로 표출하는 이유들이 그럴싸하게 포장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함을 느끼고, 성령께서 지헤를 주시도록 기도해야함을 느낀다.
7/14/11
말씀이 힘이 있어 7월 14, 2011
행19:17-22은 힘있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힘이 있는 말씀은 사람들의 회개를 가져오고 삶의 결단을 가져온다.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이 말씀을 가르쳤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의죄를 자복하고 모든 마술책 등을 불태웠는데, 5만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성경은 말씀이 힘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것이 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부분이라 믿는다. 바울은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설교했다고 고백한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통해 성령의 나타남이 있고, 사람들의 회개와 결단의 나타남이 설교자가 추구해야할 바요 성도들이 기도해야할 바이다.
이것이 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부분이라 믿는다. 바울은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설교했다고 고백한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통해 성령의 나타남이 있고, 사람들의 회개와 결단의 나타남이 설교자가 추구해야할 바요 성도들이 기도해야할 바이다.
7/11/11
평신도 사역의 가능성 7월 11, 2011
행18:24-28말씀은 평신도 사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평신도사역자는 목회자들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로마서16장에서 동역자라 불렀고, 실제로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올 때 그와 동행하며 그의 사역을 도왔다.
평신도 사역자는 말씀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라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수사학과 성경에 능통한 인물이 에베소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무언가 부족한 것을 발견한 이 부부는 그들을 자기의 집으로 초청하고 이들에게 말씀을 더 정확하게 풀어 설명하였다.
평신도 사역자는 영적 코치가 될 수 있다.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아가야로 건너가 거기서 본격적인 사역을 하게되는데, 아가야는 고린도가 있었던 더 큰 지방단위를 가리킨다. 그가 고린도에 가게된 것은 이 부부의 영향으로 보인다.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건너온 이 부부는 누구보다도 고린도의 영적 필요를 보았을 것이고 아볼로가 그리고 가서 사역할 것을 권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볼로에게 말씀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사역의 방향을 제안하였다.
평신도 사역자는 교회의 잠자는 보고이다. 교회에서 이런 평신도 사역자가 일어날 것을 꿈꾼다.
평신도사역자는 목회자들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로마서16장에서 동역자라 불렀고, 실제로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올 때 그와 동행하며 그의 사역을 도왔다.
평신도 사역자는 말씀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라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수사학과 성경에 능통한 인물이 에베소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무언가 부족한 것을 발견한 이 부부는 그들을 자기의 집으로 초청하고 이들에게 말씀을 더 정확하게 풀어 설명하였다.
평신도 사역자는 영적 코치가 될 수 있다.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아가야로 건너가 거기서 본격적인 사역을 하게되는데, 아가야는 고린도가 있었던 더 큰 지방단위를 가리킨다. 그가 고린도에 가게된 것은 이 부부의 영향으로 보인다.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건너온 이 부부는 누구보다도 고린도의 영적 필요를 보았을 것이고 아볼로가 그리고 가서 사역할 것을 권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볼로에게 말씀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사역의 방향을 제안하였다.
평신도 사역자는 교회의 잠자는 보고이다. 교회에서 이런 평신도 사역자가 일어날 것을 꿈꾼다.
7/09/11
복음과 경건 7월 09, 2011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행18:18)
복음의 자유는 경건의 형식들을 모두 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강조했던 바울은 유태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할 때 머리를 깎았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목욕물과 함께 버린 어린아이는 없는지 살펴보아야할 것 같다.
복음의 자유는 경건의 형식들을 모두 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강조했던 바울은 유태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할 때 머리를 깎았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목욕물과 함께 버린 어린아이는 없는지 살펴보아야할 것 같다.
7/08/11
초점을 분명히 하자 7월 08, 2011
"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행18:6)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비전과 목표가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때로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흐려질 때가 있다. 바울은 회심하자 마자 이방인 선교의 비전을 가졌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이제까지의 그의 발걸음도 넓게 보자면 이방 선교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이방지역의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를 했고, 1차 선교대상은 유대인어었다. 그러던 그의 행보가 고린도에서 변화를 맞는다. 유대인의 반대를 직면하자 그는 다시 한번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을 결심하게 된다.
여기에는 바울의 두려움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렇지 않아도 바울의 메세지에 사사건건 트집잡는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제 이방인 구원을 전면적으로 내세워가게될 경우 유대인들로 부터 오게될 행동들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주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이 그의 이방인 선교의 행보를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비슷한 경험을 간증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전도자"의 소명을 주셨고, 대중전도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딱 한번 그의 행보에 유혹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바로 어느 대학 총장직이었다. 실제로 빌리 그래함은 그 총장직을 받아들 몇년동안 대학 총장직을 수행했다. 처음의 의도는 대학 총장직을 맡게되면 여러 교회의 지원과 협력하에 그의 대중전도가 더욱 활성화 되리라 생각했었지만, 수많은 대학 행정일에 그것이 자기의 은사와 부르심이 아님을 깨닫고 곧 사임한다. 그 이후 계속 전도자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이 이렇게 산만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있다. 많은 경우 차선이 최선에 대한 가장 위험한 적일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비전과 목표가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때로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흐려질 때가 있다. 바울은 회심하자 마자 이방인 선교의 비전을 가졌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이제까지의 그의 발걸음도 넓게 보자면 이방 선교의 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이방지역의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를 했고, 1차 선교대상은 유대인어었다. 그러던 그의 행보가 고린도에서 변화를 맞는다. 유대인의 반대를 직면하자 그는 다시 한번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을 결심하게 된다.
여기에는 바울의 두려움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렇지 않아도 바울의 메세지에 사사건건 트집잡는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제 이방인 구원을 전면적으로 내세워가게될 경우 유대인들로 부터 오게될 행동들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주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이 그의 이방인 선교의 행보를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비슷한 경험을 간증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전도자"의 소명을 주셨고, 대중전도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딱 한번 그의 행보에 유혹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바로 어느 대학 총장직이었다. 실제로 빌리 그래함은 그 총장직을 받아들 몇년동안 대학 총장직을 수행했다. 처음의 의도는 대학 총장직을 맡게되면 여러 교회의 지원과 협력하에 그의 대중전도가 더욱 활성화 되리라 생각했었지만, 수많은 대학 행정일에 그것이 자기의 은사와 부르심이 아님을 깨닫고 곧 사임한다. 그 이후 계속 전도자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이 이렇게 산만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있다. 많은 경우 차선이 최선에 대한 가장 위험한 적일 수 있다.
7/07/11
사역의 행복, 사람의 행복 7월 07, 2011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행18:1-2)
바울은 큰 사역을 한 사람이다.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했고, 많은 제자들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그 주변에서는 인생을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그러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개인적인 친구가 있었다.
바울 주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음은 그가 사람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서 16장, 디모데 후서 4장을 보면 바울의 개인 리스트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 안부와 관심과 애정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을 얻는 비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역도 행복을 주지만 사람이 주는 행복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다. 큰 사역을 하면서도 주변에 진정한 사람이 없는 어느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여러 개인들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던 바울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바울은 큰 사역을 한 사람이다.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했고, 많은 제자들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그 주변에서는 인생을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었다. 실라와 디모데가 그러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개인적인 친구가 있었다.
바울 주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음은 그가 사람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서 16장, 디모데 후서 4장을 보면 바울의 개인 리스트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 안부와 관심과 애정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을 얻는 비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역도 행복을 주지만 사람이 주는 행복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다. 큰 사역을 하면서도 주변에 진정한 사람이 없는 어느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여러 개인들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던 바울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7/04/11
신 Athenist 7월 04, 201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17:21)
이들은 말씀을 좋아한다. 이들은 새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배회한다. 이들은 말씀강좌, 세미나, 치유집회, 은사집회 등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집회 저 집회를 떠돈다. 여기에 자기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는다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 아데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즐기며 여기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여정에서 아덴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앞서 있었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에서는 많은 결실이 있었지만, 유독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성경은 이들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비교한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때에 선포되는 메세지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2;13)
베뢰아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선포된 말씀이 성경말씀에 정말 그렇게 쓰여있는지 조사해보고 연구하는 태도를 가졌다(행17:11)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즐겼지만, 거기에 헌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즐기지만 헌신이 없는 말씀감상가들에는 말씀은 아무런 결실이 없다.
바울을 통해 선포된 동일한 메세지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는 파장과 결실을 가져왔지만,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야고보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행1:22)
이들은 말씀을 좋아한다. 이들은 새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배회한다. 이들은 말씀강좌, 세미나, 치유집회, 은사집회 등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집회 저 집회를 떠돈다. 여기에 자기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는다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 아데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즐기며 여기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여정에서 아덴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앞서 있었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에서는 많은 결실이 있었지만, 유독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성경은 이들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비교한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때에 선포되는 메세지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2;13)
베뢰아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선포된 말씀이 성경말씀에 정말 그렇게 쓰여있는지 조사해보고 연구하는 태도를 가졌다(행17:11)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즐겼지만, 거기에 헌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즐기지만 헌신이 없는 말씀감상가들에는 말씀은 아무런 결실이 없다.
바울을 통해 선포된 동일한 메세지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는 파장과 결실을 가져왔지만,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야고보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행1:22)
7/01/11
찬송의 기적 7월 01, 2011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행16:25)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1.불평한다.
2.기도한다.
3.찬송한다.
어떤 이는 되어진 상황을 불평하고 원망하며 보낸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최소한 불평이나 원망하지는 않지만, 이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못하는 신앙인들 역시 많다. 또 다른 이들은 고난이 올 때 기도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 상황에 찬송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빌립보 감옥의 기적은 옥문이 열릴 때가 아니라 이들이 찬송불렀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1.불평한다.
2.기도한다.
3.찬송한다.
어떤 이는 되어진 상황을 불평하고 원망하며 보낸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최소한 불평이나 원망하지는 않지만, 이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지 못하는 신앙인들 역시 많다. 또 다른 이들은 고난이 올 때 기도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 상황에 찬송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빌립보 감옥의 기적은 옥문이 열릴 때가 아니라 이들이 찬송불렀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tag: 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