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12

Position & Purpose

성경적 관점에서 우리의 모든 자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로보암 뒤에 왕위에 오른 이들에게 주신 메세지는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헤아리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폐위당했다. 우리의 현재의 자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겸손이 필요하다.

4/25/12

하나님 나라의 이상한 원리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위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주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고자 하는 자는 얻으리라 하셨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여로보암이다. 열왕기상 14장에서 여러보암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너를 위하여"(9절)란 표현이다. 그는 자기추구를 위해 하나님에게서도 돌아섰다. "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9절). 그러나 하나님 없는 자기추구는 파멸로 이어졌다. 그의 병든 아이는 치유를 거절당했고, 그의 가문에 재앙이 임하리란 예언을 듣게 된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4/24/12

동료에게 오는 시험

시험은 대개 가까운 이들로부터 온다. 열왕기상 13장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은 동료 선지자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동료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 말을 따랐다가 불순종의 죄를 짓고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들은 낯선 이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때로 비판적이지만, 자신이나 가까운 이들에 대해서는 기준을 넘어선 관용을 베풀 때가 많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동역자들, 교우들, 목장 식구들에게오히려 시험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영적 경각심을 새롭게 해준다.

4/21/12

비슷함에 속지 마십시오

때로 우리의 신앙적 추구가 "비슷함"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여러보암은 예루살렘을 모방했다. 열왕기상 12:32은 그가 추구한 것은 "유다 절기와 비슷"하게 하는 것임을 밝힌다. 실제로 여로보암의 종교는 예루살렘의 종교와 비슷했다. 그들도 제단이 있었고, 제사장이 있었고, 절기가 있었다. 그러나 몇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1.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 제단을 쌓았다.
2.레위지파가 아닌 보통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았다.
3.율법이 정한 절기가 아닌 임의의 절기를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절기는 니산월에 유월절, 초실절, 무교절이 있었고, 시완월에 맥추절(칠칠절, 오순절)이 있었고, 티슈리월에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보암은 제8월 헤스완월에 절기를 만들었다. 그의 절기는 성경과는 무관했다.

그들은 유사했지만, 달랐다. 결국 여러보암의 제단은 우상숭배의 현장이 되었다.
신앙인의 무늬가 있다고 신앙인은 아니다. 교회의 무늬가 있다고 다 진정한 교회라고 믿지 않는다.
십자가의 복음을 번영의 복음으로 대신하고, 성령의 인도를 경영학과 심리학으로 대신하는 강단과 교회는 여로보암의 제단과 다를바가 없다.

4/20/12

누구의 자문을 받아들일 것인가?

중요한 결정의 시기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다. 때로는 여러명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들마다 다른 방향의 자문을 줄 수가 있다. 이때 우리는 누구의 자문을 받아들일 것인가? 열왕기상 12:1-19에서 르호보암은 노인의 자문이 아닌 동료들의 자문을 채택했고, 결과는 이스라엘의 분리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항상 노인들의 자문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의 자문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쇠락해가는 지름길은 자기 취향의 이야기만 들으려는 영적 편식성이다. 귀가 한쪽으만 열려있다면 닫힌 귀를 가진 것이다. 우리는 르호보암에게서, 그리고 어떤 리더들에게서 이런 경향을 본다. 우리는 열린 귀를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4/18/12

업적과 마음

열왕기상 11:1-13은 하나님 앞에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마음이 변하여 버림받는 인물을 대하게 된다. 솔로몬이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건축이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변했다. 그가 사랑한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켰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그가 이제는 우상의 산당을 건설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마음을 변하게 만드는 "누구" 혹은 "무엇"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만드는 것은 혹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