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12

예수 떠나기를 구하다!!!

사람들이 예수를 거절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때로 사람들은 교리적인 이유, 교회의 비리, 목회자들의 문제점 등을 든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예수가 줄 수 있는 불편함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마가복음 5장의 귀신들린 거라사인의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예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경제적인 손실이 있었다. 이것이 그들이 예수 떠나기를 구한 실제 이유였다.

점점 사회는 반기독교적 분위기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수를 거절할만한 수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핵심에 들어서면 예수의 존재가 주는 불편함이 문제다. 예수는 때로 경제적 손실보다 한 영혼의 치유를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의 고통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되어가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신다. C. S. 루이스는 "당신이 편안함을 이유로 종교를 찾고 있다면 나는 결코 기독교를 권하지 않겠다"했다. 예수의 존재는 때로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하고 위협하고, 무엇인가를 버리라 하고, 때로 방향을 바꾸라 하고, 가진 것을 내려놓으라 한다. 이 불편함을 피하고는 예수를 제대로 만날 길이 없다.

1/19/1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

때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이 구호는 거창한데,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늘 막4:21-25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 두가지를 지적한다. 본문말씀은 소위 '하나님 나라 비유' 중간에 삽입된 말씀이므로 주제 역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첫째로 숨어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빛은 등경 위에 있어야 하듯,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것을 어느 장소, 어느 자리에서도 떳떳하게 밝히고,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하는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습관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자는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 본문의 '헤아림'은 예수님이 다른 본문에서는 남을 정죄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함부러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창한 사역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심는 겨자씨들이 된다.

1/17/12

더러는...

마가복음 4장의 예수님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말씀인즉 씨는 좋은 밭에만 떨어질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때로는 길가나 돌짝밭, 혹은 가시밭에 떨어져 말씀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100%가 좋은 밭이면 그지없는 행복이겠지만, 사실 사역의 현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마음 밭은 <가돌길>-"가시밭, 돌짝밭, 길가"이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이 소망이 되는 것은 "더러는" 좋은 밭에 말씀이 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막길을 가다가 어쩌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쁨처럼, 어쩌다 그런 좋은 밭에서 말씀이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행복을 누린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4)

1/05/12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것 같이

마가복음의 기준으로 보자면 막1:21-28에서 일반대중들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처음 예수를 접한다. 처음 예수를 접한 그들의 소감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에 놀랐고, 귀신을 쫒아내는 예수의 능력에 놀랐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예수를 접한 감동도 '놀라움, 경이로움'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평생에 우리를 놀래키고도 남음이 되시는 분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처음의 그 경이로움이 어느 순간에 '단조로움'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사로잡던 많은 구호들이 빛바랜 사진으로 자리잡고,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함"으로 시작하여 처음 말씀을 접하는 그 경이로움과 신선함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예수가 아닌 다른 사진들을 붙잡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예수 아닌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록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우리의 구호라 할지라도 말이다. 예수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신다. 우리는 예수를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04/12

나는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

막1:13-20에서 예수님이 그의 사역을 함께했던 지역과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수재들과 학자들이 아닌 변방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어부들이었다. 우리는 정반대를 추구한다. 모든 것의 중심되는 곳에서 스마트하고 리더십 있는 이들고 함께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Mr.Smart가 이룬 일들은 세상에 감동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일은 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범한 이들이 예수님을 힘입어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진한 감동이 된다. 나는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

1/03/12

성령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다

마가복음 1:9-13 말씀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난 성령님은 침례시에 하나님의 음성과 더불어 예수님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함께하시는 위로의 성령님인 동시에 그를 광야로 이끌어 시험과 영적 전장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시기도 하시다.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성령님인 동시에 우리를 시험과 훈련의 현장으로 이끌어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는 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때로 위험한 기도이기도 하다. 내가 깨어지는 관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