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11

우리는 정기적으로 자기를 겸손케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스라 8장에서 귀환을 앞둔 에스라 일행은 금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에 금식과 함께 자주 따라오는 말은 "스스로 겸비케 하여"라는 말이다. 금식은 자기를 낮추는 시간이다. 일상적인 음식을 먹지 못해도 한없이 약해지고 마는 초라한 피조물된 나를 만나게 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어쩔 수 없는 피조물된 인간인 자기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할 수 없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상황을 주께 보여드리고 하나님을 절박하게 붙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11/09/11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 과정에 외부의 누군가가 협력하겠다고 나섰는데, 이들은 전혀 우리의 신앙세계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절한 것인가? 에스라 4장의 귀환자들은 성전건축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들을 만났다. 귀환자들은 "우리는 홀로 건축하리라"는 선택을 내린다.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방해를 경험하게 된다.
주님의 일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결국은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당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신앙공동체로서의 순수성을 깨뜨릴 수 있다면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 제안은 사업의 현장에도 교회에도 찾아올 수 있다. 이런 제안을 거절함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이득 때문에 우리가 교회로서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11/08/11

통곡과 찬양

에스라 3장을 보면 귀환자들은 무너졌던 그 자리에 다시 성전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젊은 이들은 기뻐 찬양하는 한편 과거의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이들은 통곡한다. 찬양과 통곡이 함께 어울어졌다. 나는 종종 이 경험을 한다. 목회의 현장에서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찬양과 감사를 아니 드릴 수 없다. 귀환자들처럼 아직은 지대만 놓은 것 같은 허전함이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그러나 또 한편 과거의 영광을 보았기에 통곡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영광스럽게 일하실 수 있는가를 보았기에, 하나님이 말씀이 얼마나 능력있게 사람들을 변화시켰는가를 보았기에, 그 말씀 앞에 사람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고 죄를 고백하고 자기의 삶을 주께 드리는 그 영광을 보았기에 지금의 이 자리가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 통곡의 심정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