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08

선배 목사 바울에게 배우은 인생레슨

갈라디아서 4장 16-20절에는 당시 바울과 갈라디아교인간의 어떤 긴장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인생레슨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진실은 사랑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16절). 사랑은 긴장을 가져오고 관계의 어려움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진실도 말하는 것이다. 요즘의 시대는 부담스러운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은 시대이다. 이것은 설교자요 목회자로의 유혹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실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때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불편해지는 관계가 있어도 용기를 내는 것이 사랑이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이다.

둘째로 잘못된 동기로 선한 열심을 낼 수 있다. 이것은 바울 이후 갈라디아 교회에 왔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17절). 열심자체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이 바울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을 자신들에게로 향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열심을 내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선한 경쟁심은 언제든지 좋은 것이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18절). 여기 사모함이란 '시기, 질투, 경쟁심'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일에 대해서는 선한 경쟁심이 필요하며 장려할 만한 일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바울 자신도 '운동장에서 많은 사람이 달음질할지라도 오직 한 사람만 상을 얻지 못하느냐'고 상기시키면서 자기가 그 상을 받기 원한다고 한다. 일종의 선한 경쟁심이다. 어떤 이들의 경쟁심은 파괴적이지만, 주님을 위해서는 생산적일 수 있다.

넷째로 수고와 고통없이 이룰 수 있는 없다. 바울은 현재의 갈라디아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고통없는 결과는 없다. 아마도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수고는 20절에 나와있는 모습인 것 같다. 바울은 다시 언성을 높여 교인들을 책망해야하는 심경을 말한다. 이것은 누구든 피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영적 아비로서 때로는 책망해야할 일이 있을 때 이것을 피하지 말자. 이것은 사람들과 대립구도가 되어 그들과 영적인 씨름을 해야하는 일인지 모른다. 아마도 나의 성격상 이것은 피하고 싶은 유혹인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없이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바울을 더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