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10

우리를 치유할 수 없는 것들

호세아 5:8-14에서 우리를 치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를 치유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달려나가는 경향이 있다.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13절)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으로 지칭한다. 에브라임의 선택은 하나님이어야 했다.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사람들이 치유받지 못하는 많은 경우가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이라 한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두고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안과 치유는 다르다.

해결책인 것 처럼 보이는 것들은 많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문제되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 누군가 우리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 스포츠나 도박 심지어 교회활동 같이 어딘가에 열중하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대면하지 않고 찾아나서는 우리의 해결책은 우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한다. 에브라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문제였다. 하나님 대신에 그들이 찾은 우상이 그들이 지금 격고 있는 온갖 문제의 원인이었다. 에브라임은 그 문제를 직시해야만 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문제가 생기자 앗수르라는 해결책을 찾는다. 그리고 이들은 해결책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이 되었다.

오늘의 교회는 심리치료소라 할 정도로 온갖 상담, 심리적인 용어가 교회안에 난무한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사람들을 진짜 문제에 대면시키고 하나님 앞에 세우기 보다는 그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정도를 치유라 여기는 경우다. 어쩌면 우리는 다음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