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12

아무 것도 살려두지 말라?

신20: 16.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벌기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거부감이 드는 대목들이 있다. 남의 땅에 대한 침략 자체만 생각해도 하나님의 일이라 부르기가 꺼림직할 뿐 아니라, 그 땅의 모든 생명을 살려두지 말라는 말씀도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이런 거부감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몇가지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1. 모든 땅의 소유권과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가나안 정벌에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 중에 기존의 거주민들의 악행과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셨다는 언급들이 자주 나온다. 기존의 거주민들도 그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주인이 그 땅의 새로운 거주민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불법이 아니다.

가나안 땅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유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주실 수도 있고 거둬가실 수도 있는 권리가 있는 분이시다.

2. 하나님의 주권은 도덕성 위에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비도덕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도덕적 기준들로 하나님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기존의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라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때로 세상에 엄청난 폭력적 비극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이것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윤리적 판단 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할 부분이 있다.

다만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3. 하나님의 모든 주권적 행위는 인간에게 모두 계시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해의 한계는 하나님이 계시하는 것 만큼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계시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든 행적과 모든 의도를 다 추적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 피조물의 한계이고 인간 이해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벌기 같은 사건으로 하나님을 헤아리는 것은 잉크병에 담긴 물로 바다를 헤아려보려는 시도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불가해성은 그분의 하나님 되심의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우리 수준에서 완전히 파악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분을 하나님되심은 인간이해의 수준만큼이나 제한적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4. 가나안 정벌기에는 적용의 특수성이 있다. 성경의 말씀 중에는 일반적 원리와 특수한 원리가 있다. 일반적 원리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원리들이다. 특수한 원리는 특정한 시대와 상황에 주어진 적용의 원리이다. 안식일의 문자적 적용은 구약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주어졌지만, 예수님과 초대교회는 안식일의 적용을 더 넓게 했다. 구약제사는 이스라엘이라는 선민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문자적으로 그 말씀을 지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정벌은 오늘날 그대로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다만 안식일, 제사 등에서 우리는 영적인 원리들을 발견하듯이, 가나안 정벌에서도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나안 정벌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정벌하고, 호주 백인들이 애버리진 원주민들을 정벌하고, 기독교 서구제국들이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성경적용의 특수성을 왜곡한 결과들이다.

5. 계시된 가나안 정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언약의 성취와 거룩한 공동체의 형성이다. 가나안 정벌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주변문화와는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 본문 17절을 NIV에서는 "Completely destroy them!"이라 되어있다. 가나안적인 것은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그 남은 것들이 이스라엘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