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사64:3)
신앙공동체는 거짓 위안을 줄 수 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제사나 절기 등의 종교행위를 통해서, 혹은 거짓 선지자들이 들려주는 말에 스스로 위안을 받았다. 오늘의 신앙인들도 동일한 거짓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이사야64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들에게 이것은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나 우리들에게나 필요한 것은 자각이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라면 우리의 한국 교회에, 아니 우리의 교회 공동체에, 혹은 나 자신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회개로 주 앞에 나가는 주일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