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관리가 자기 딸이 죽자 예수께 찾아와 도와달라 하였다. 예수께서 손을 얹으면 자기 딸이 살아나겠다는 것이다.
오랜 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자락을 가만히 만진다.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오늘의 두 케이스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만 뉴스 매체에서 다룬다면 이들의 믿음은 맹신으로 오도되었을 것 같다.
키엘케고르는 믿음은 비약(leap)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 있고, 소망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지점에서도, "그래도 나는 소망한다"고 하는 것이 믿음이다.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은 모든 주변 정황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도 그를 믿는 것이다.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모든 상황이 믿음을 갖기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그분을 기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만 판단하고 결정하면 믿음이 정박할 항구가 없어지게 된다. 때로는 우리의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다만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기 아들로 예수님을 찾아온 한 아버지의 기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