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14

대속자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욥19:25)

"나의 대속자는 살아계시니..."  이 표현은 욥기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이고 찰스 웨슬레의 작사한 찬송가에서도, 헨델의 메시아에서도 노래로 불려진다.

이 구절은 사실 논란이 많다. 대속자를 하나님으로 보기도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이 구절이 부활신앙을 말한다 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다 하는 이들이 서로 맞선다.

성경을 오늘의 관점에서만 보려할 때 성경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칠 수 있다. 

욥을 악인으로 규정한 빌닷의 연설(18장)에 대한 응답으로 욥은 친구들마저도 떠나버리고 하나님마저도 그를 원수처럼 대하는 처절한 고독을 말한다. 그는 고난을 초래할 만한 죄가 없는데 왜 하나님이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법정에 세우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렇게한들 질게 뻔한 싸움이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줄 누군가를 소망한다. 욥기 9:32-35에서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제3의 "판결자"를, 16:19-21절에서는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증인이 되고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중재해주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19장에 들어 소망은 확신으로 변한다. 자신의 박해자 하나님(19:22) 앞에서 그를 위한 대속자( "고엘")가 분명있을 것이라 고백한다. 욥기에서는 그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실 욥은 그가 누구인가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무죄함이 입증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죽음 이후라도 떳떳하게 서서 하나님을 대면할 날이 올 것이며, 하나님을 더 이상 낯선 타인처럼 보게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이다(27절)

이것이 욥의 세계관에서 풀 수 있는 해법이었다. 물론 우리는 신약의 빛으로 욥의 대속자를 감지한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소개된다.
욥과 다른 것은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해줄 중보자를 찾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으로 인한 중보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중보자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