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욥32:9)
폴 투르니에는 노인의 영광은 힘이 아니라 지혜라 했다. 어느 공동체건 시간이 지나가면 원로들이 생겨난다. 그분들에게 젊은 시절의 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륜의 지혜는 공동체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엘리후는 "어른이라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아름다운 노년의 준비는 지혜의 우물을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나이 듦에 따라 축적된 경험들을 바람에 나는 겨처럼 흩어지게 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사람들이 와서 길어 먹을 수 있는 우물 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가둬진 물은 썩기 쉽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우물 물이 썩지 않도록 공돌을 배치하여 돌 사이 물길을 만들고, 물들의 흐름과 부딪힘을 기획하여 우물 물을 늘 신선하게 하였다.
그저 물들이 많이 고여있는 것만으로는, 그저 경험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 오히려 경험 많음이 해악이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물 물을 늘 새롭게 해야한다. 그 새로움은 성령으로 우리의 경험들을 비추어 보고,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우리의 경험들을 재조명할 때 주어진다.
엘리후는 노인 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욥32:8).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자. 하나님은 숨결로 함께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