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14

그리스도인은 무골호인?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욥27:2)

만일 우리 시대에 욥을 만난다면 사귀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나 같으면 친구들과 그렇게 긴 논쟁을 하기 보다는 내 입장을 적당선에서 양보하고 싸움을 피했을 것 같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논쟁할 필요가 과연 있었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친구들이 서운한 얘기들을 했다고 해서 그들을 원수라고 부르고 그들에게 저주까지 쏟아내는  것은(27:7절이하)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까지도 논쟁에 끌어들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하는 모습은 경건한 사람의 이미지로 보기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욥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의 우리는 너무 순화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내 입장을 꾿꾿히 주장하기 보다는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미덕이라 배워왔고 그래서 신앙좋은 사람이란 무골호인 같은 이미지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욥의 이미지는 확실히 다르다. 욥은 이제 맹세까지 해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정당함을 물리치시고 자기 영혼을 괴롭게 하셔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2절).

욥에게 이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되었다. 자신은 친구들을 결코 옳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죽기 전에는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무죄하다는 자신의 입장을 굳게 잡을 것이라 말한다(27:5-6).

13-23절까지 악인들에 대한 다양한 심판과 저주를 말하는 것도 만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악인으로 판명된다면, 자신이 그 저주를 다 받겠다는 절박함이었다. 

이런 욥의 이미지는 얼른 소화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 소화불량은 우리 시대의 신앙인의 이미지란 것이 너무 편안한 이미지로만 길들여져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