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오늘의 말씀(벧전2:1-5)에는 신령한 젖(2절), 신령한 집(5절), 신령한 제사(5절)가 나온다. 치열한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의 신령함을 추구하라는 권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고통의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겐 보다 현실적인 권면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폴 투르니에는 그리스도인이란 신앙을 배제한 현실주의자도 아니요, 현실을 무시하고 신앙만 중시하는 맹목주의자도 아니요 현실에 뿌리박은 신앙인이라 했다. 신앙은 현실에 눈감는 것은 아니다.
한편 헨리 나우웬은 '현실적이 되라'는 것이 예수님이 받았던 시험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민중들을 위해서 돌이 떡이 되게하라는 것은 그들에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왜 그것이 시험이 될까? 그것은 현실은 너무나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추구는 쉽게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고통의 현실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온통 그것만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에게서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우리의 눈을 묶어 두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의 욕망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에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고난의 진짜 위험은 바로 현실을 아파하다가 영적 추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염려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