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사도행전에서 고넬료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의 회심은 이방인 선교의 걸림돌이 되었던 유태인들의 고정관념이 교정되는 살아있는 사례로 채택되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초대교회가 이방인 선교를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성경은 그가 회심이기 이전에도 경건하여 구제와 기도를 많이 하던 사람인 것을 주목한다. 그의 회심은 베드로의 방문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우리 보기에 충분히 경건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직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교회는 경건한 교인들 가운데에도 여전히 회심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이들의 회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또 한편 그의 경건과 구제와 기도가 비록 회심 이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것을 귀하게 보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복음주의가 지나치면 회심이전의 교회활동 내지 경건한 삶의 모습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거나, 아직 회심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모두 '바리새인'으로 정죄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천사가 고넬료에게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4절)고 말한다. 회심 이후의 삶만 하나님에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회심이전의 우리의 모든 삶의 경험과 경건과 말씀연구 등을 다 사용하신다. 때때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우리의 인생경험들,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의 눈물의 기억까지도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