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17:21)
이들은 말씀을 좋아한다. 이들은 새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배회한다. 이들은 말씀강좌, 세미나, 치유집회, 은사집회 등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집회 저 집회를 떠돈다. 여기에 자기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는다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 아데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즐기며 여기에 그들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여정에서 아덴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앞서 있었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에서는 많은 결실이 있었지만, 유독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성경은 이들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비교한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때에 선포되는 메세지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2;13)
베뢰아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선포된 말씀이 성경말씀에 정말 그렇게 쓰여있는지 조사해보고 연구하는 태도를 가졌다(행17:11)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즐겼지만, 거기에 헌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즐기지만 헌신이 없는 말씀감상가들에는 말씀은 아무런 결실이 없다.
바울을 통해 선포된 동일한 메세지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는 파장과 결실을 가져왔지만, 아덴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야고보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행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