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6:17-24에서 하나님의 싸인(sign,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을 만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는 싸인을 구했고 나도 그것을 구하곤한다.
처음 뉴질랜드에 가게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지구촌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던 때였는데 뉴질랜드 해밀턴에서 청빙이 있었다. 교민은 1500여명 되는 작은 소도시였고, 교우들은 얼마되지 않은 작은 교회였다. 담임목사님께 상담을 드렸는데 대번에 반대를 하셨다. 그런데 떨쳐버리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싸인을 구했다.
다음날 아침 경건의 시간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메시지여서 내게 익숙한 환경을 떠날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 당시 전도폭발사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모시고 지도자 임상훈련기간 중이었다. 한 목사님의 설교본문이 사도행전 8장이었다. 사마리아 부흥의 주역이었던 빌립을 성령이 부르시고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가라 하실 때, 빌립은 순종한다. 가게되는 지역의 교민과 교우들이 작기 때문에 주저하던 내게 빌립은 큰 도전이 되었다. 적어도 나는 빌립보다 큰 목회지로 가게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기도하고 솔직한 제 생각을 말씀드렸다. "하나님, 그곳은 너무 작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마음 속에 들려오는 생각이 있었다. "큰 사역지에, 큰 교회에 갈 사람은 많다. 그런데 누군가는 작은 사역지를 자원해야하지 않는가?"
당시 차량을 구입하기 위해서 신청해 놓았는데, 자동차 회사의 분규로 차량이 몇달째 출고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뉴질랜드행을 결정하게 되고 차량은 전화상으로 간단히 취소할 수 있었다. 후일에 생각해 보니 그것도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
아주 오랫동안 정리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모든 것을 정리가 되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한가지 싸인으로 여겨졌다.
때때로 말씀을 접하는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인지, 아니면 내 주관적인 생각인지 분별이 가지 않을 때, 우리는 기드온처럼 결정을 위해 주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심하게 응답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