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삼상25:39)
사울의 핍박에서 승리했던 다윗은 나발의 모욕으로 커다란 실수를 할 뻔 했다. 다윗 자신도 나발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악한 일"이라고 부른다. 나발이 준 모욕으로 다윗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모아서 나발을 몰살시키려 했다.
종종 인생의 큰 싸움에서 승리한 이가 작은 싸움에서 패배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울의 핍박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에도 그는 자신을 지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나발의 문제는 작은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에 자신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을 본다.
인생의 초조감이 우리로 커다란 실수를 하게 할 수 있다. 사울을 피해 다닌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언제 도망자의 여정을 끝낼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평생을 그렇게 쫒기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는지 모른다. 이런 시기에 듣는 말 한마디는 결정타가 되고 우리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도 한다.
더군다나 현재의 다윗의 생활은 불안정했다. 한때 "다윗은 만만이요"라는 백성들의 칭송은 벌써 예전 기억이 되고 있었다. 나발에게 먹을 것을 부탁해야할 만큼 삶은 고단해지고,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을 섬겼던 경험에서 발견한 한 가지도 바로 다윗의 나발 사건이다. 한국에서의 풍요로운 기억과 달리 언어의 장벽으로 이민생활에서 육체적인 노동 등에 종사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 작은 말 한 마디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태풍처럼 다가오는 경우들을 많이 목격했다.
오늘의 스토리는 아비가일의 기지로 나발은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재앙을 피한 사람은 오히려 다윗이다. 이때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그의 선한 명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다윗의 무리는 한낱 강도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셨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치명적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런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해주셔서 우리를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개입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삶에도 이런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